좋은 추억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추억은 과거형일 뿐 현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왕년에 나도 잘 나갔는데’ 하는 아쉬움은 현실 부적응자들의 신세한탄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참하게 살고 있음에도 자기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과거에 얼마나 잘 나갔었는지를 부각시킨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문화에 복고풍이 불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1980년대 유행했던 노래나 문화를 복원시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들도 어느 정도 공감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추억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좋은 추억을 되새김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삶의 의욕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추억이 현실을 이길 수는 없지만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좋은 추억은 사람들에게 순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자에게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좋은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그것을 경험한 1세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반추되는 좋은 추억입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자주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먼저 추억케 하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셨는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입니다. 지금은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사는 이스라엘로 과거 출애굽 사건을 돌아보도록 계속해서 요구하십니다. 광야라는 현실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라는 큰 주제를 묵상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좋은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회성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하신 하나님이 지금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신다는 점을 부각시키신 것입니다. 오래전에 일어난 출애굽 사건을 돌아보도록 하시는 이유는 과거형 사람이라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점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1세대 이스라엘만의 좋은 추억이 아닙니다. 이것은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이후의 세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을 시와 노래로 작사, 작곡하게 해서 이스라엘로 찬양하도록 하신 것이 시편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했든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읽든 상관 없이 이스라엘은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좋은 기억으로 삼아 매일 되뇌이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과연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는 출애굽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사건을 되뇌이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온 인류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성령은 이 복음을 교회에 적용시키셨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새롭게 함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자랑은 출애굽 사건이듯이 교회의 자랑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지금도 삼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건인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