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0-2020 에베소서6:16, 영적 무기(4) “믿음의 방패”

제목:영적 무기(4) “믿음의 방패” (에베소서6:16)

오늘은 영적 무기 네번째인 “믿음의 방패’를 살펴보자. 믿음이 어떻게 영적인 무기인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를 보자. 우선 믿음이 영적인 무기임을 잊지 말자. 믿음은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는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엡3:12,17;4:13에 보면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과연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믿음을 방패로 사용해야 한다. 무엇을 막아내는 방패인가?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이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불신앙’이다.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불신앙이란 불화살을 무차별적으로 쏜다.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이스라엘, 신약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공격을 받아 신앙적으로 상처를 크게 입었다. 불신앙의 뿌리는 무엇인가? 의심이다. 작은 의심일지라도 처리하지 않으면 불신앙으로 커진다(약1:6). 마지막으로 과연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마귀의 불신앙이란 불화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한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우리의 믿음을 더해달라’고 했다. 히브리서는 11장에서 믿음의 선배들을 소개한 후 12:2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한다.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 믿음을 키우지 않으면 마귀의 공격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믿음을 키우는 중이다. 한시도 경계심을 풀지 말고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04-12-2020 고전15:3-4, “부활하신 예수님”

제목: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15:3-4)

부활주일인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는 기념한다. 기독교의 심장인 부활은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여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수호할 것인가?

우선, 부활은 이미 일어났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자. 사복음서는 부활의 역사적인 장면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물론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지만 예수님만이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고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으셨다.

다음으로 “성경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자. 본문은 두 번에 걸쳐 ‘성경대로’를 반복한다. 구약 성경인데 부활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사람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부활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이라 한다. 들었거나 수집했거나 심사숙고해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였다. 보물을 찾는 것과 선물을 받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선물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전하는 사람이 됨을 기억하자.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한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파워이다. (나눔) 부활을 받아들이고 부활 신앙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서로 나눠보자.

03_01_2020 살후2_16-17 “양선의 열매”

제목: 양선의 열매 (살후2:16-17)

나쁜 뉴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을 행하면서 살고 있다. 성령의 역사로 선을 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본문은 선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문16절은 사랑과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을 말하는데, 선하신 하나님의 진면목이다.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가에 대해 성경은 초지일관 선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한 빛만 있으신 분이 선하신 하나님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요8:44은 마귀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존재가 마귀이며 세상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악에 물들어 있는 상태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죄로부터 깨끗해질 수 있는 살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성령으로 마음에 심겨진 우리는 선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본문은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로 선을 행하도록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믿음은 행함을 배척하지 않는다. 믿음은 행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선행을 위해 새로 지음받은 존재가 교회임을 잊지 말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을 행해야 한다. 선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반영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선함이 교회 안에 가득해지도록 해야 한다.

02_23_2020 엡2_5-7 “자비의 열매”

제목: 자비의 열매 (엡2:5-7)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위는 자비에 속한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무엇이 다른가? 출발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태도이다. 본문 7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는 하나님의 자비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우리 힘으로는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이 죽음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죽은 상태인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 있다. 우리의 역할은 전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는가? 그렇다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와 머리로만 아는 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머리로만 알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타인에게 나타내지 못한다. 받은 은혜를 주는 삶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간다. 삭게오는 자비하심을 체험한 사람의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비의 마음이 가득넘칠 수 있다. 또한 룻이 보아스로부터 받았던 친절은 자비의 본질을 드러낸다. 상대방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조건을 따지지 않고 도움을 주는 마음은 자비의 본질이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예수 안에서 가장 화려하게 드러난다. 예수와 함께 살아난 우리는 자비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02_16_2020 벧후 3_9 “인내의 열매”

제목: 인내의 열매 (벧후3:9)

사람은 인내하면서 살아간다. 성령의 열매로서 인내는 무엇이 다른가?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내는 심판과 멸망을 당장 실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멸망’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구약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말한다.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멸망 등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임했음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외쳤다. 심판과 멸망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인의 구원이다.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잘 보여준다. 요한복음3:17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이유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인내를 비웃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비웃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인내를 불평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신실한 신자들은 심판과 멸망을 실감하기에 하나님의 인내를 찬양하고 기뻐한다.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 안에 가득채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예수님을 소망해야 한다. 이유는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 믿음은 인내로서 신앙 생활하게 한다. 인내로서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신앙의 인내는 우리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게 한다.

02_09_2020 엡 2_14-18 “화평의 열매”

제목: 화평의 열매 (엡2:14-18)

성령의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성령을 따르는 이들 속에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화평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성령은 평화를 교회 속에 심으신다. 과연 어떤 형태의 평화인가? 우선,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선물로 주어지는데, 우리의 힘과 실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진다. 보상이 아닌 선물로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십자가로 소멸하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기에 선물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인 인류의 모습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셨다. 과연 이것을 받아들이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가볍게 여기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는 실천하는 평화로 우리 안에 나타난다.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버린 십자가의 능력은 교회를 변화시킨다. 여러 형태로 우리 사이를 막아선 벽들을 십자가는 지금도 허물고 있다. 예수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고, 한 몸을 이루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교회가 된다. 성경은 우리가 평화를 이루어가야 함을 강력히 호소한다.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것을 당부한다. 이렇듯이 성령은 화평을 교회 속에 심으시고 막힌 벽들을 허물고 계신다. 예배 및 모임

02_02_2020 살전 5_16-18 “희락의 열매”

제목: 희락의 열매 (살전5:16-18)

성령의 두 번째 열매인 ‘희락’은 성령을 따르는 교회의 모습이다. 기쁨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는 일이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성령의 기쁨을 체험한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이사야는 영영한 희락을 맛보았고, 다윗은 기쁨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했다. 바울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교회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먼저 생각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희락은 교회를 변화시킨다. 첫째, 축제와 같은 예배를 드린다. 둘째, 치유를 경험한다. 셋째, 관계 회복이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교회는 언제든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영적 침체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워 이겼지만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슬럼프에 빠져 전혀 힘을 내지 못했다. 다윗은 간음죄를 지은 후 영적 슬럼프에 빠졌다.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또 다른 위험은 세상 재미의 추구이다. 성령의 기쁨은 세상 재미로 인해 무의미해진다. 데마는 세상 재미에 빠져 복음을 위한 삶을 포기했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공격 앞에서 성령의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바울의 권면처럼,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으로 인한 희열을 체험하면서 교회는 거룩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예배 및 모임 안내 주일예배 주일 1:00 PM 새벽예배 화-금 5:30 AM / 토 6:00

01_26_2020 요일 4:11 “사랑의 열매”*

제목: 사랑의 열매 (요일4:11)

성령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삶 속에 열린다. 교회는 이 열매로 인해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된다. 첫 열매는 ‘사랑’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심으시는 사랑이란 열매가 있다. 그것을 본문이 가장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이다. 이 둘의 순서는 항상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어떻게 사랑하셨느냐 전에 우리의 반응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펼쳐졌는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이다. 왜 예수님이 오셨는가?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우리가 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하나님 사랑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죄사함이 크게 느껴지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근거로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한다. 우리의 사랑은 일방적이면 안된다. 사랑은 매우 실제적이어야 한다. 또한 사랑의 대상이 포괄적이어야 한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사랑이 가르쳐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은 교회를 거룩하고 활기 넘치게 만든다.

01_19_2020 갈라디아서 5_16-17 “성령만이 답이십니다”

제목: 성령만이 답이십니다 (갈5:16-17)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루는 일은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오직 성령만이 이런 교회를 이루게 하신다. 이유는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으며, 교회는 성령의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일을 해내실 수가 있다. 성령은 개인에게 임하실 뿐 아니라 교회 전체를 거룩하게 이끄신다. 그래서 성령은 실제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신비이다. 예수님도 성령의 내주하심을 바람에 비유하시면서 그 신비로움을 말씀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지만 우리는 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경험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각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지만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하나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성령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따라야 한다.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실제적인 순종인데, 성령의 열매가 그 증거이다. 성령을 따른다면 그 열매로 확인이 된다. 상식적으로 열매로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듯이 성령의 열매도 성령을 따르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성령을 따르는 일은 구호에 불과하지 않다. 모호한 대상을 막연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가 분명하듯이 성령을 따르는 일은 분명하다. 이것이 교회로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로 거듭나게 한다.

01_12_2020 창세기 26_12-22 “활기가 넘치는 교회”

제목: 활기넘치는 교회 (창26:12-22)

교회 표어 중 두 번째인 ‘활기찬 교회’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가득한 교회를 이룰지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 이삭은 우물 파는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자꾸 다른 종족에게 강제로 빼앗기곤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얻게 된 이야기이다. 이것은 교회가 활기넘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더 활성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우물을 통해 더욱 극대화하려고 했듯이,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 말씀, 기도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더욱 얻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기심과 다툼이란 복병이 언제든지 침범할 수가 있다. 이삭도 이 두 가지로 고생했듯이 교회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기심은 뼈를 마르게 하며, 그것을 이길 자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다툼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독과 같다. 교회는 활기찬 모습을 이루고자 했을 때, 이 두 가지 장벽에 부딪친다. 과연 교회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것인가? 이삭은 우물을 빼앗겼을 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우물을 팠다. 이처럼 교회는 활기넘치는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영적 에너지를 얻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허락하신 영적 축복을 활성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