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6-2020 엡6:13-14, 영적무기(2)“의로움”

제목:영적 무기(2) “의로움” (에베소서6:13-14)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영적 무기를 갖추어야 한다. 오늘은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는 두 번째 무기를 살펴보자. 바울은 ‘의’를 ‘하나님과의
관계’ 로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인가? 로마서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라 말한다. 엡2:1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하며, 엡2:3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가? 우리의 노력으로 안된다.
엡2:13은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간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되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에베소서4:13,15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까지 자라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적
성장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된 이후에 우리 안에 나타나야 할 변화이다.
하지만 그 길이 좁고 힘들 수 있다. 그러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가 힘들다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하나님이 절대 허락하시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벗어나서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기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04-19-2020 엡6:12-14, 영적무기(1)“진리”

<오늘 설교 요약> 제목:영적 무기(1) “진리” (에베소서6:12-14)
우리는 항상 영적 전쟁 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적 무기들이 있을까요? 오늘은
첫 번째 무기인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진리의 허리 띠’를 갖추라
합니다. 허리 띠란 벨트의 기능을 말하는데, 옷 전체를 묶어주는 역할과
허리를 튼튼히 받쳐주는 기능입니다. 진리란 허리 띠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진리에 대해 바울은 에베소서4:21에서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기준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4:6에서 ‘내가 곧
진리’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무엇을 공격할까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집중
공격합니다. 요즘은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인데 이렇게 말하면서 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아주 교묘한 전략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엡4:21에서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께 딱 붙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껌딱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듣고 예수님 안에서 배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진리의 허리 띠를 단단히 매고 있는
것입니다.

04-12-2020 고전15:3-4, “부활하신 예수님”

제목: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15:3-4)

부활주일인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는 기념한다. 기독교의 심장인 부활은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여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수호할 것인가?

우선, 부활은 이미 일어났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자. 사복음서는 부활의 역사적인 장면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물론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지만 예수님만이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고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으셨다.

다음으로 “성경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자. 본문은 두 번에 걸쳐 ‘성경대로’를 반복한다. 구약 성경인데 부활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사람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부활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이라 한다. 들었거나 수집했거나 심사숙고해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였다. 보물을 찾는 것과 선물을 받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선물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전하는 사람이 됨을 기억하자.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한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파워이다. (나눔) 부활을 받아들이고 부활 신앙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서로 나눠보자.

04_05_2020 벧전2_24-25 “고난의 유익”

<오늘 설교 요약>제목: 고난의 유익 (벧전2:24-25)

종려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베드로의 시각으로 기념하고자 한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베드로는 그가 깨달은 것을 오늘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우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명심하자. 기독교 신앙은 허구가 아닌 진실 위에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음”을 기억하자. 고난과 죽음은 예수님이 친히 겪으셨는데, 모두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사실과 하나님의 뜻이 밝혀졌는데, 과연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는가? 믿는다면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끼치는 유익의 실체이다. 하나는 존재의 변화이다. ‘전에는 길을 잃은 양이었는데, 이제는 목자에게 돌아왔다.’ 우리가 뭔가 기여한 것이 없다. 그런데 존재가 바뀌었다. 다른 하나는 삶의 변화이다. 이것은 존재가 바뀐 후에 점차적으로 일어난다. 바뀐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이다. 죄와의 관계를 끊고, 의와의 관계를 살리는 삶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믿으면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산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삶에서, 평생에 걸쳐서 일어난다.  

03_29_2020 엡6_10-13 “영적전쟁”

제목: 영적 전쟁 (엡6:10-13)

성령의 열매에 이어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 한다. 영적 전쟁의 적은 마귀이다. 마귀는 보이지 않지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되 그 힘이 막강하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성도, 활기찬 교회 이루기 위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서 이 땅에서 활동한다. 죄와 죽음을 무기로 세상을 통치하는 마귀의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멸하셨다. 과연 우리는 그에 맞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이다. 어떻게 대적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질 것을 당부한다.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단지 우리의 능력과 실력으로 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져야 한다.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면 무조건 진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 강해질 수가 있는가? 본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무장이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느냐에 대해 바울은 세밀하게 가르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영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강해짐을 명심하자. (나눔) 여러분은 영적 승리를 위해 어떤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03_22_2020 갈 5:22-24 “절제의 열매”

제목: 절제의 열매 (갈5:22-24)

우리는 절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절제와 무절제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절제가 필요하실까요? 하나님은 완벽하시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절제하셔야 했을까요? 죄가 없으신 분으로 사셨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절제는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세 가지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육체의 정욕, 혀, 분노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유혹들이기에 더욱 절제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신앙이 최고의 수준에 있어도 찾아옵니다. 다윗은 최상의 신앙 상태에서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다. 남의 아내인 밧세바를 강제로 취했습니다. 혀의 절제는 언어 생활인데, 야고보는 ‘혀는 불의의 세계’라 했고,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절제력을 발휘해야 할 영역인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분노는 반드시 승리해야 할 영역입니다. 분노의 표출로 사람들이 상처입기에 신앙인으로서 성령의 힘에 의존하여 그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분노가 거룩해 보여도 통제하지 않으면 불의를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절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심으시는 거룩한 열매입니다. 절제는 우리로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나눔) 여러분의 절제의 삶은 어떠한가요? 어떤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한지를 서로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03_15_2020 갈 6_1 “온유의 열매”

제목: 온유의 열매 (갈6:1)

온유함에는 부러움이란 좋은 이미지가 있다. 반면 왜곡된 이미지도 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온유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하셨다. 그분의 삶에서 온유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수용성과 비타협성이다. 아무리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어도 회개하면 받아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죄와 타협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죄를 아주 강렬하게 비판하셨다. 독사의 새끼들이라 하실 정도였다. 이렇듯이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분의 온유하심을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이유이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가 우리 안에 나타나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를 나타낸다. 이것은 수용성이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범죄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대할 수가 있다. 이것은 비타협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온유함은 사람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죄인에게 진노하시지만 회개한 자를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자. 온유함은 겸손과 쌍둥이이다. 겸손해야 온유할 수가 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이다. 이런 겸손이 우리로 상대에게 온유함을 나타내게 한다.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가 매일 묵상해야 한다. 온유함은 교회로 활기 넘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03_08_2020 고후 1_18, 20 “충성의 열매”

제목: 충성의 열매 (고후1:18, 20)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진실함이 증명될 때이다. 진실하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은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갈 때 이 열매가 열린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매우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심과 그러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것을 증명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입으로 내신 말씀을 헛되이 돌아오게 하지 않으신다. 구약 안에서뿐 아니라 신약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메시야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을 완벽히 성취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얼마나 그분을 신뢰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또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주목하자. 우리가 기도할 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대로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것을 증명하신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이 열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듯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달란트 비유처럼 적은 일에 충성할 수 있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능력은 미약하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우리의 충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순종하는 것이다. 환경을 이기는 신실함은 성령의 역사를 입증한다. 이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하자.

03_01_2020 살후2_16-17 “양선의 열매”

제목: 양선의 열매 (살후2:16-17)

나쁜 뉴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을 행하면서 살고 있다. 성령의 역사로 선을 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본문은 선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문16절은 사랑과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을 말하는데, 선하신 하나님의 진면목이다.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가에 대해 성경은 초지일관 선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한 빛만 있으신 분이 선하신 하나님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요8:44은 마귀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존재가 마귀이며 세상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악에 물들어 있는 상태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죄로부터 깨끗해질 수 있는 살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성령으로 마음에 심겨진 우리는 선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본문은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로 선을 행하도록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믿음은 행함을 배척하지 않는다. 믿음은 행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선행을 위해 새로 지음받은 존재가 교회임을 잊지 말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을 행해야 한다. 선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반영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선함이 교회 안에 가득해지도록 해야 한다.

02_23_2020 엡2_5-7 “자비의 열매”

제목: 자비의 열매 (엡2:5-7)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위는 자비에 속한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무엇이 다른가? 출발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태도이다. 본문 7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는 하나님의 자비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우리 힘으로는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이 죽음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죽은 상태인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 있다. 우리의 역할은 전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는가? 그렇다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와 머리로만 아는 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머리로만 알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타인에게 나타내지 못한다. 받은 은혜를 주는 삶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간다. 삭게오는 자비하심을 체험한 사람의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비의 마음이 가득넘칠 수 있다. 또한 룻이 보아스로부터 받았던 친절은 자비의 본질을 드러낸다. 상대방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조건을 따지지 않고 도움을 주는 마음은 자비의 본질이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예수 안에서 가장 화려하게 드러난다. 예수와 함께 살아난 우리는 자비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