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8/8/2021 “자격이 없을지라도” (시편130:2-5)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도와달라고 기도하는데 변한 것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앙적으로 건강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신앙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죄악을 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라면서 주를 피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신앙관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을 말한 시인처럼 주의 용서를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용서를 신앙 무기로 활용했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는 확신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격이 없을 때에도 용서하셨기에 신앙 생활하는 동안에 드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하나님의 용서로 이겨낼 수 있음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경우도 간음죄를 짓고나서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주의 용서를 기억하며 살아났습니다. 회개하고 통회하는 자를 멸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도우시는 주의 손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면목이 없고, 부족함이 많은 우리의 모습에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주의 용서를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8/01/2021 갈라디아서 1:6-7, 신앙 성장(23)

제목: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나요?” (갈1:6-7)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선물의 관점으로 은혜를 설명합니다. 엡2:8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며 선물 받은 사람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에 은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은혜는 신앙 성장의 토양이기에 우리는 은혜를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이 은혜를 받았음에도 여기서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 증거는 다른 복음을 이 교회가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따랐던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느냐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다른 것을 섞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에다 율법을 섞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면 율법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율법 아래로 들어가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혼합주의는 이처럼 은혜로 시작해서 행위로 마치게 하는 형태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은혜의 복음은 처음과 마지막까지 은혜가 다스리게 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은혜의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나면 율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붙들어야만 우리는 은혜에서 떠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주일설교 7/25/2021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요16:33)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 현실은 전쟁터일 때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을까요?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평안을 체험하고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지극히 평안하셨는데, 그들은 안절부절 못할 뿐만 아니라 평온한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풍랑 때문에 평안을 잃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태풍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되면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평화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약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담대하라’는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어떻게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환난을 주는 세상에서 담대할 수가 있게 합니다.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환난 한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체험할 수가 있으며 환난 앞에서 담대할  때 더욱 강력해집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담대해질 수가 있습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면 신앙 성장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일설교 7/18/2021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신앙” (시23:1)

신앙 성장을 촉진시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거리 좁히기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기에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본문은 세 가지를 알려줍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마음에 새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미지는 무척 중요합니다.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사람과의 거리도 멀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면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목자’에 비유한 것도 좋은 이미지를 갖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용서, 그리고 긍휼 등은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만들어줍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개인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목자인데, ‘나의’란 개인적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자란 말보다 ‘나의’ 목자란 말이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만족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말에는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에 만족한다는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좋은 형편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에도 만족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목자로 섬기는 신앙의 참모습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은 신앙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주일설교 7/11/2021 “누구와 동행하고 있나요?” (요16:32)

신앙 생활은 혼자 하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없다면 신앙은 의미를 상실하고 맙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체험해야 합니다. 특별히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조차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가 있는데, 전반부는 혼자 남겨지게 된 예수님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후반부는 그럼에도 하나님의 동행에 대해 확신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3년 넘게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돈 욕심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맙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결국 예수님은 홀로 남겨진 상태로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어느 순간에 빛이 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듯이 아무도 없을 때에 가장 빛이 납니다. 우리가 홀로 남겨진 듯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동행을 더욱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외로움, 불안,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외로울 때에 하나님과의 동행을 더욱 깊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7/04/2021

 <오늘 설교 요약>         제목: “기쁨이 넘치는 신앙 생활” (요16:20-21)

우리는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근심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신앙인은 어떻게 기쁨이 넘치는 삶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을 고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근심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너희의 근심이 기쁨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단합해서 기쁨을 만들어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기쁨이 선물처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올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사도행전에서 기쁨이 넘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듯이 우리에게 근심이 온다해도 기쁨으로 바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앞단락에서 성령의 오심을 예고하셨는데, 그 결과로 근심이 기쁨으로 바뀐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기쁨을 우리 안에 생성시키신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쁨의 위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출산 후에 태어난 아기를 보며 기뻐할 뿐 아니라 출산의 과정에서 겪은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비유를 통해 이 기쁨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기쁨이 어느 정도로 위력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인해 이러한 기쁨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듯이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6/27/2021 사사기6:12-14, 신앙 성장(18) “믿지 아니하는 마음”

제목: “믿지 아니하는 마음” (삿6:12-14)

신앙 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신앙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해결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드온 이야기는 신앙 성장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지 아니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듣지 않겠다고 거절한 것은 불신의 표출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신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근저에는 불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쌓여 있다가 불신으로 굳어지고 이것이 거절의 형태로 밖으로 표출됩니다. 이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기드온입니다. 그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함께 하시면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불만입니다. 둘째,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불만입니다. 셋째는 어떻게 우리를 버리실 수 있느냐란 불만입니다. 이것들은 우리 신앙의 독이 되어 믿지 아니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내버려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불만을 듣고서 하나님이 보이신 반응은 차분함과 단호함이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이루라고 하시고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란 해결책을 주신 것을 볼 때에 신앙적으로 순종하는 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05/30/2021 고린도후서1:8-9, 신앙 성장(14) “누구를 의지하며 살 것인가?”

제목: “누구를 의지하며 살 것인가?” (고후1:8-9)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는 복을 받고 있나요? 성경에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의 실체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말을 성경은 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으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바울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환난을 이야기합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었고,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였으며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구약의 요셉 이야기를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는 문구가 나옵니다. 상황은 노예가 된 후이며, 억울하게 감옥 생활할 때에 ‘형통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아이러니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신앙 성장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환난을 만날 때마다 적절히 소화해냈습니다. 본문처럼,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는 방식으로 소화했습니다. 환난을 통해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는 계기가 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로 신앙 생활을 더욱 활기있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이것이 신앙 성장의 실제 모습입니다.

주일설교 05/23/2021 디도서 1:15-17, 신앙 성장(13) “은혜의 삼중주를 아십니까?”

제목: “은혜의 삼중주를 아십니까?” (딛2:11-12)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은혜를 모르고서 기독교 신앙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은혜의 삼중주가 있는데, 첫째, 은혜는 구원의 시작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본문이 말합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는 이렇듯이 우리의 공로가 전혀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집니다. 이 은혜 때문에 자격이 없는 죄인인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 은혜는 성장의 동력입니다. 본문은 ‘우리를 양육하시되’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기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하지만 은혜가 방종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오히려 죄를 짓는 원인 제공자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은혜가 있으니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는 이상한 논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란 말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신앙적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지 죄를 짓게 하지 않습니다. 셋째, 은혜는 인격을 바꿉니다. 이는 은혜가 구원을 가져오고 우리를 양육한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변화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경건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렇듯이 은혜의 삼중주는 우리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들입니다.

주일설교 05/16/2021 “주를 위해 살다” (빌1:15-17)

제목: “주를 위해 살다” (빌1:15-17)

좋은 일을 하고나면 기분이 뿌듯해집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한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주를 위해 사는 일상의 삶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요셉은 죄의 유혹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게 됩니다. 바울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주를 위해 살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동료 신앙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도 힘든데 바울을 더 괴롭게 하려는 이들이 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시기와 다툼, 분쟁으로 주를 위해 일했던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은 비슷한데, 그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바울의 신앙을 얼마든지 꺾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를 위해 사는 삶을 살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는 긍정적 시각입니다.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란 그의 신앙이 이런 위기를 이기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울을 더 괴롭게 하려는 동료 신자들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았던 힘이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그의 열정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기뻐하겠다는 적극적 태도입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듯이 주를 위해 살려는 우리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