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01/24/2021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행13:4-12)

성령의 지시로 안디옥에서 구브로 섬으로 간 바나바와 사울은 뜻밖의 놀라운 일을 목격합니다. 그 섬을 통치하던 총독이 그들의 전도로 회심한 것입니다. 이 일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의 결과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말씀이 한 사람에게 역사하는 과정을 세 가지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말씀에 흥미를 갖는 것입니다. 총독은 바나바와 사울이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따로 이 둘을 불러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이 그의 회심이 시작한 시점입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회심의 한 과정입니다. 둘째, 말씀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관심을 갖던 총독이 실제로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는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 거짓 예언자인 바예수는 총독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나바와 사울에게 그것을 빼앗기자 훼방을 놓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그의 사악한 실체를 폭로하면서 그를 맹인이 되게 합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본 총독은 말씀의 위력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체험한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체험한 총독은 그 이후 믿음으로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입니다. 지속적으로 그 말씀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말씀의 위력이 나타나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는 교회에 항상 일어나야 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 교회에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설교 01/17/2021 “성장하는 교회” (행13:1-3)

안디옥 교회의 성장한 모습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성장은 단순히 숫적인 증가로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인격적인 성장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런 성장을 보여주는 특징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특징일까요? 첫째, 말씀의 사람으로 키우는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말씀이 교회 안에 뿌리내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영적 분위기가 교회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둘째, 주를 섬기는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배와 기도의 공동체로서 주를 섬기는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주를 섬김에 있어서 예배와 기도라는 중요한 두 요소를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께 민감한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성령께서 직접 중요한 사명을 하나 지시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의 지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거룩한 책입니다. 성령의 지시가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됨을 확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교회 성장은 말씀, 섬김, 성령의 역사로 인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성장이 우리 교회 안에 일어나는 축복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설교 01/10/2021 행12:20-24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인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고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 일은 위대함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오히려 작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살해하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둘 때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헤롯은 기세등등해서 자신을 신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인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커보이고 하나님은 작게 보이는 그릇된 신앙관이 침투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현실에서 위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에서 헤롯이 주의 사자에 의해 벌레에 먹혀 죽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그의 기세가 한 순간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작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성경의 하나님과 현실의 하나님 사이의 괴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요? 믿음입니다. 믿음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영적 무기입니다. 바람과 바다 앞에서 무서워하던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하셨듯이 세상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장벽을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강할수록 우리는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01/03/2021 행12:16-17 “신앙은 체험입니다”

올해 표어인 “은혜속에 성장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신앙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의 체험에서 우리가 확인할 첫 번째는 ‘구원의 체험’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의 구원이 아닌 이미 믿는 자로서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이미 믿는 자로서 감옥 생활 중에 구원의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는 자는 살면서 여러 가지 구원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체험이 차고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응답의 체험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구원을 교회에 알렸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기도의 응답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응답의 체험입니다. 베드로를 위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로서 경험하는 놀라운 영적인 축복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은 성경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대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알맞은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 살아계심의 체험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체험과 응답의 체험이 가져다주는 결과인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빠져 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한 번 체험했습니다. 이런 체험이 우리 신앙인에게 허락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체험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주일설교 12/27/2020

<오늘 설교 요약>              제목: “기도가 최선입니다” (행12:1-5)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듯이 교회도 어려움에 직면하면 신앙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움 앞에서 이것을 해냈습니다. 신앙 기본 중 하나인 ‘기도’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세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교회는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와 ‘남을 위한 기도’를 비교하면 어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일을 교회는 해내야 합니다. 둘째, 기도의 열정입니다. 기도에 우리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간절히’ 기도한 모습은 이것을 증명합니다. 구약 히스기야 왕과 신약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열정적인 기도의 모습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열정을 다 쏟아 부을 때가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믿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믿음이란 단어는 나오진 않지만 이들은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죽임당할 때, 베드로가 감옥에 갇힐 때 하나님에 대해 실망할 수 있었지만 교회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어려움속에서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최선의 길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기도에 열정을 쏟아부을 때 믿음의 기도는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주일설교 12/20/2020 히2:14-15 “예수님이 오신 이유”

성탄절을 생각하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아무리 우울한 시대에 산다해도 우리는 이 날을 마음껏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은 마귀 존재 자체를 없앤다는 것보다 그 힘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역하는 내내 자신이 반드시 죽고 부활해야 함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왜 죽음으로 마귀를 멸해야 하느냐면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무기로 사용해서 세상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이 무기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죽기를 무서워했으며 그로인해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게 됩니다. 죽음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히브리서는 죽음의 공포와 죽음의 노예됨이 죽음의 세력을 쥔 마귀의 전용 매뉴였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고 죽음의 노예로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혈과 육을 입고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셔서 마귀의 권세를 죽음으로 멸하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안에 들어간 자는 죽음의 공포와 노예 생활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렇듯이 성탄절은 예수님의 놀라운 복음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우리는 마음껏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일설교 12/13/2020 사도행전 11:25-30 “아름다운 성장”

교회는 은혜와 성장이란 두 요소가 필수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이룰 때 교회는 건강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은혜로 세워진 후에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헌신된 신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가르치는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일 년동안의 가르침을 통해 수많은 제자들이 길러졌습니다. 이들이 안디옥 사회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을 얻게 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그리스도에게 푹 빠져 있었던 이들입니다. 둘째,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지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이들은 교회에 모여 일 년동안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훈련을 쌓은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교회는 운동 경기에 비유하자면 단체전과 같습니다. 개인이 팀 전체 안에서 활약하듯이 교회 속에서 개인들은 서로를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지역 사회에 신앙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유대 예루살렘 교회를 재정적으로 도운 놀라운 모습을 안디옥 교회는 보여줍니다. 교회는 이렇듯이 지역 사회, 이웃 교회를 돕는 일을 할 때에 신앙적으로 성장합니다. 교회의 아름다운 성장은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며 교회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참여 속에서 성취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12/06/2020 사도행전 11:22-24 “넘치는 은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라 하듯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선명할 정도로 뚜렷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것이 부족해도 은혜만 충만하다면 교회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며 서로 도우며 채워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은혜로 채워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 가득합니다. 또한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바나바는 은혜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은혜를 보고 분노한 요나와 달리 그는 마음껏 기뻐했습니다. 이런 영적 분위기는 교회를 더욱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은혜를 받고서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에 머무는 일입니다. 지속적으로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머무는 것은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은혜에서 떠나는 것은 식는다거나 무관심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굳건한 마음입니다. 굳건해지지 않으면 은혜에서 쉽게 떠나게 됩니다. 죄의 유혹은 우리를 은혜와 이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굳건한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히브리서4:16이 말하듯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교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새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위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언제나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11/29/2020 사도행전 11:1-4,17-18 “하나님 편에 서다”

한 사람의 회개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고넬료의 회심은 그 기쁨을 다시 확인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유는 할례자가 무할례자와 식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대 문화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와 같습니다. 베드로를 향해 쏟아진 비난의 수위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베드로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환상을 보여주셨고, 어떻게 고넬료 가정에 가게 되었으며, 복음을 선포한 가운데 성령이 어떻게 임하셨는지를 열정적으로 전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였습니다. 얼마나 멋진 신앙 자세입니까! 아무리 비난과 야유가 쏟아져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이상 당당하게 외쳤던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듯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신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배와 말씀, 성경공부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신자가 길러지면 교회는 영적으로 강해집니다. 모세가 약했지만 바로왕에 맞서 하나님 편에 섰듯이 우리도 세상과 맞서 하나님 편에 서는 신앙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목소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길러져야 합니다. 때론 하나님 편에 서는 일이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축복이 날마다 넘쳐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설교 11/22/2020 욥기 1:21-22, “감사의 폭 넓히기”

상실의 고통은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신앙적으로 성장을 이루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욥입니다. 욥이 겪은 상실의 고통은 너무도 커서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녀 모두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란 고백을 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유혹은 상실의 고통을 파고듭니다. 욥은 고통을 잊기 위해 죄짓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상실의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지만 그는 이것을 이겨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 원망을 자주 했습니다. 물이 없어서, 음식이 없어서, 생활이 고달파서 원망했습니다. 욥은 더 고통스러운 상실을 경험했지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단한 신앙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감사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감사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대단했을지를 상상해볼 수는 있습니다. 감사의 폭은 상실의 고통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될 수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향한 감사는 상실의 고통 중에도 우리 삶 속에서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