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3/5/2023 “성찬이 중요한 이유” (고전11:23-26)

오늘은 성찬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3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 합니다. 성찬식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여줍니다. 23-25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 때 하신 말씀을 바울이 그대로 인용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떡을 떼시면서 이는 나의 몸이라 하셨고, 잔을 가지시고는 이 잔은 내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교회가 하는 성찬식이 사람이 제정하거나 교회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작품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찬식이 중요할까요?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떡을 내 몸이라고 하셨고, 잔을 내 피라고 하셨을까요? 성찬식이 중요한 이유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찬식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어떻게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될 수 있느냐에 지나친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에 집중해야 합니다. 떡과 잔을 나누며 기념하는 것은 왜 예수님이 죽으셨냐입니다. 우리 대신에 죽으셨기에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것이며, 우리 대신에 죽으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이 있습니다. 참여자에게는 영적 자극인 회개와 감사를 줍니다. 참여하지 않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영적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을 알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2/26/2023 “하나님의 상속자들” (엡1:11-12)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네 번째 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란 점입니다. 본문 11절, ‘우리는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상속’을 뜻합니다. ‘그 안’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상속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재산을 뜻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상속은 무엇일까요? 재산일까요? 구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상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상속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기근 때문에, 외세의 침략으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에도 이스라엘 땅은 로마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땅이 아닌 예수님 안에 있어서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자에게는 영생, 부활이란 놀라운 축복이 허락되었습니다. 죽음과 영벌이 침범할 수 없는 완전 새로운 영역입니다. 여기서는 맛보기만 경험할 뿐 영생과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벽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상속되는 가장 완벽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속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본문 11절은 이에 대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에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자격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속입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생과 부활을 상속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2/19/2023 “용서받은 죄인” (엡1:7)

오늘은 하늘에 속한 복 중 ‘죄사함’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설득, 논증이 아닌 선언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사실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죄 사함을 대하고 있나요? 바울처럼 감격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죄인 인식이 없으면 죄 사함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다면 그 다음 생각할 것은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죄인이 처벌 받는 것은 정의입니다. 죄인은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죄값을 치르는 방식은 벌금형, 금고형, 징역형 등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의 값이 무엇이냐면 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죄값을 치르지 않고 무죄 선고를 받는 방법이 있을까요? 죄가 없어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가 있는데 무죄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죄가 없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피’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뿐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 죄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죄인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를 죄 사함 또는 속량이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죄인임에도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죄 용서받은 자로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감격, 감사가 넘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일설교 2/5/2023 “입양된 사람들” (엡1:5-6)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두번째 요소는 ‘우리가 입양된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양이 하나님의 예정에 속해 있습니다. 입양하기로 예정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입양을 바꿀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만의 결정입니다. 우리가 확인할 것은 입양의 아름다움입니다. 입양의 축복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죄인을 입양하셨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양은 죄인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입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수식한 내용을 보면, ‘거저 주시는 바’라고 합니다. 은혜는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은혜는 순전히 받을 자격은 없고 내세울 공로도 없는 이에게 거저 베푸는 사랑이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서 나온다”고 말했는데, 매우 적절합니다. 입양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죄인 입양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입양된 사람은 은혜로 입양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입양된 사람은 보는 세상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입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우리의 시각 자체가 바뀝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양의 은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입양의 은혜를 찬양을 통해 밖으로 표출합니다. 하나님의 죄인 입양은 그 자체로 은혜의 행위입니다. 그 혜택을 받은 우리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1/29/2023 “하나님의 선택” (엡1:3-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하나님의 선택’이란 복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본문 4절에서 바울이 한 이야기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형식적인 찬송이 아닌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감격의 찬송입니다. 우리의 반응과 사뭇 다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우리의 선택 기준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불완전하고 후회하기 쉽고, 변수가 많습니다. 또한 시간, 지식, 능력 세 가지 면에서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이 모든 요소와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이 이해한 하나님의 선택의 본질을 우리가 알 때에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찬송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선택 기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선택 기준이 우리 또는 세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기준입니다. 둘째, 선택 시간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셋째, 선택 목적입니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이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도록 하려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진리입니다.

주일설교 1/22/2023 “축복받은 인생” (엡1:3)

오늘은 축복받은 인생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첫 번째로 확인하는 것은 그들의 인생이 축복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마다 불행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축복이냐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본문 3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가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축복을 놓치는 것은 우리가 하늘이 아닌 땅에 속한 복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에 속한 자들이 누리는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산상설교가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입니다.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 모두가 오직 땅에만 보물을 쌓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도 땅에 속한 의식주만을 염려하는 우리의 약점을 아시고 하신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집니다. 하늘에 속한 자로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한 신앙 고백이 그 증거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늘에 속한 복을 추구하는 인생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땅에 속한 것이 부족해도 하늘에 속한 자로서 받은 축복을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맞다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을 일상에서 드러내며 하늘에 속한 자임을 증명해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1/15/2023 “교회를 보는 우리의 시선” (엡1:1-2)

오늘부터 에베소서를 강해하고자 합니다. ‘함께하는 신앙, 함께가는 교회’란 표어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가 보여주는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에 심으신 가장 아름다운 꽃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보는 부정적 시각을 넘어서서 따스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첫 시간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에베소 전체를 조망하고자 합니다. 사도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 전체를 관통하는 두가지 주제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품으신 사람들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에베소서가 십자가를 가장 핵심 주제로 표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의 사명은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할 일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과 영적 전쟁입니다. 십자가 희생으로 세워진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십자가 은혜에 감격한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교회 사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의 힘만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능력에 의지하여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품으신 사람들이 십자가 능력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 소망을 품고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의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1/8/2023 “함께하는 신앙, 함께가는 교회” (엡2:22)

올해 표어인 ‘함께하는 신앙, 함께가는 교회’에 담긴 신앙적인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표어의 핵심은 ‘함께’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도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이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세상이지만 남을 위해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남들이 꺼려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세리와 죄인들을 품으셨습니다. 경건한 바리새인들이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했지만 감수하셨습니다. 다음으로, 교회란 어떤 곳일까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교회는 자발적으로 모여 예배드리는 공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라고 합니다. 끝으로 교회는 함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서로 사랑하면’을 ‘함께할 수 있으면’으로 바꿔도 됩니다. 서로를 품어주고 함께 손잡고 갈 수 있으면 교회 밖의 사람들도 눈치를 챕니다. 교회가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곳임을 세상이 알게 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신앙이란 이름으로 함께 손잡고 갈 수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면 함께 갈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1/1/2023 “새 힘을 얻으리니” (사40:30-31)

신앙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을 공허한 소리로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새 힘을 얻을 것’이란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고귀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만 오롯이 바라본 적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새 힘’이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살 맛이 나고, 그 무엇도 무섭지 않게 되는 힘입니다. 이 힘이 얼마나 센 지를 보여주는 두 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독수리 비유인데, 날개치며 하늘을 힘차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처럼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새로운 힘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또 다른 비유는 달리기 선수 비유입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할’ 정도로 새 힘을 얻을 것을 묘사합니다. 물론 달리기 선수도 지치고 걷는 것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31편은 근심 때문에 눈, 영혼, 몸이 쇠하여지고 일생을 슬픔으로 보냄에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강하고 담대해진 신앙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에 이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이 힘으로 올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탄절 예배 주일설교 “가장 빛나는 탄생” (눅2:13-14)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주일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진리들이 있습니다. 첫째, 태어나기전에 이미 존재하셨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합니다. 둘째, 사람의 몸으로 오신 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 교리입니다. 세번째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결혼해서 예수님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마리아가 임신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세상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 마굿간입니다. 이는 평범하고 가장 낮은 자로 오셨음을 상징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탄생은 가장 빛이 납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누가복음2:13-14입니다.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예수님 탄생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존재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찬란하게 보여주시는 존재입니다. 끝으로, 땅에 사는 모든 죄인에게 유일한 평화이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이십니다. 예수님과 견줄 대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축하하는 예수 탄생은 이렇게도 찬란하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