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9/26/2021 “뿌리 깊은 나무처럼” (행14:21-22)

루스드라를 지나 더베로 간 바울과 바나바는 그 곳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라고 적고 있습니다. 복음의 열매가 풍성히 열렸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지역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갔던 곳을 찾아 되돌아갔습니다.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다시 가서 그 곳에 세워진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교회를 단단히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마음을 강하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신자의 마음을 강하게 했는데, 이는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둘째, 믿음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여기서 ‘권하다’는 것은 용기를 주다는 뜻입니다. 믿음에 머물도록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이는 마음을 강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신자의 마음을 강하게 하려면 믿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으면 마음 또한 강해집니다. 셋째, 어려움을 견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환난을 함께 묶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이식되었기에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를 견뎌내야 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는 지금도 교회로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되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주일설교 9/19/2021 “복음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행14:11-15)

사도행전을 관통하는 주제로 ‘복음의 활동성’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 복음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앉은뱅이를 걷게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은 기적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격화했습니다. 이 때에 둘은 다시 한 번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다시 하지 않게 하려하는 것임을 증거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삶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섬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복음 증거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루스드라에서 알 수 있듯이 복음을 듣지만 삶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인에게도 나타납니다.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경험을 했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들이 옛 습관에 다시 빠져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삶을 바꾸어놓습니다. 복음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인격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인격을 이루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주일설교 9/12/2021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행14:8-10)

선천적 앉은뱅이가 바울에 의해서 일어나 걷는 기적이 일어난 사건을 본문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신앙적인 면이 있습니다. 앉은뱅이인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 안에 생성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이 생겼다는 점은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설교를 통해 누가 변하겠어란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현실에서 설교를 듣는 중에 믿음이 생기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영적인 변화입니다. 설교 중에 생겨야 하는 최고의 기적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믿음이 가장 생기기 어려운 사람이 설교를 듣는 중에 변화되었다는 본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믿음과 가장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설교가 들려져야 하고 얼마든지 믿음의 반응을 보일 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 있음을 바울이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믿음이 밖으로 표출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영역이라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가장 모범적인 표출은 회심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회개로 표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며 이 믿음은 표출될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09 05 2021 사도행전 14 1 – 4 “인내와 은혜로 채워진 신앙 생활

이고니온 지역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도 복음에 반응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음의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이는 복음 전하는 자로서 큰 기쁨입니다. 설교자인 바울은 이런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이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설교자에게 악감을 품게 한 것입니다. 나쁜 마음을 먹게 한 것입니다. 악한 의도로 마음을 훔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양면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이렇듯이 수용하는 이들과 저항하는 이들이 생깁니다. 복음 자체의 문제가 아닌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교만을 멀리하게 하고 좌절을 극복하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복음을 전한 것을 볼 때에 인내심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필요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이 두 사도를 통해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신 주의 은혜의 손길이 강력했습니다. 이처럼 인내심과 주의 은혜는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이 두 요소는 우리 신앙 생활을 건강하게 해주는 필수요소임을 기억하고 인내심과 주의 은혜로 더욱 채워져 더 활기찬 신앙 생활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주일설교 8/29/2021 사도행전 13:49-52 “위축되지 않는 신앙으로”

비시디아 안디옥 도시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한 결과로 그곳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주의 말씀이 그 지역에 퍼져나간’ 것인데, 말씀의 확신이 두드러졌습니다.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는데, 말씀 자체의 능력과 그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수고입니다. 이 두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주의 말씀이 강력히 주변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또한 그 말씀을 목숨까지도 내놓고 퍼뜨리는 이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이들의 눈물과 땀을 주님이 사용하십니다. 교회사를 보면 이 두 요소가 얼마나 강력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 확산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당시 권력자들을 선동해서 복음의 확산을 가로막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린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당당함의 표시입니다. 조금도 굴하지 않고, 위축됨이 없는 모습입니다. 또한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제자들이 힘을 얻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멋진 모습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힘을 내게 합니다. 교회는 지금도 위축되지 않는 신앙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복음이 있으며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 허락된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8/22/2021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나요?” 사도행전 13:47-48

사도행전을 관통하는 두 개의 큰 줄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늘은 말씀의 능력과 연관된 주제를 다루려 합니다. 말씀 듣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말씀을 긍정적으로 들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반응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쁨의 반응입니다. 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에서 알 수 있듯이 말씀 듣는 이들에게 기쁨이 있느냐를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을 또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느냐와 말씀이 주는 기쁨을 실제로 체험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둘째, 말씀을 높이는 반응입니다. 48절,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는 말씀을 듣는 이들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찬송한다는 것은 높이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듯이 그분의 말씀을 찬송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믿음의 반응입니다. 본문에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을 듣는 청중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믿음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수용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설교에 불신으로 대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의 반응은 매우 소중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는 히브리서의 경고처럼 우리는 말씀에 대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떤 마음인지를 항상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설교 8/15/2021 요한복음 18:10-11, 신앙 성장(25) “더 큰 뜻을 위하여”

하나님을 향해 하는 말이 진심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을 때 분명히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진실함이 의심될 정도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순간에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말고의 귀를 베어버립니다. 이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주를 위하는 마음으로 했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지점을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칼을 들었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가로막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칼 사용으로 예수님의 일을 이룰 수가 없음을 알려준 것입니다. 베드로의 열정이 주님을 위한 것이지만 이 순간에는 그릇된 방향으로 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다 더 큰 뜻을 위해 참아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열심만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알려주심으로 그들이 더 큰 뜻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보다 더 큰 뜻을 알고 그것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신앙 생활하면 좀 더 주님의 길에 가까워질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8/8/2021 “자격이 없을지라도” (시편130:2-5)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도와달라고 기도하는데 변한 것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앙적으로 건강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신앙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죄악을 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라면서 주를 피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신앙관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을 말한 시인처럼 주의 용서를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용서를 신앙 무기로 활용했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는 확신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격이 없을 때에도 용서하셨기에 신앙 생활하는 동안에 드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하나님의 용서로 이겨낼 수 있음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경우도 간음죄를 짓고나서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주의 용서를 기억하며 살아났습니다. 회개하고 통회하는 자를 멸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도우시는 주의 손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면목이 없고, 부족함이 많은 우리의 모습에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주의 용서를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8/01/2021 갈라디아서 1:6-7, 신앙 성장(23)

제목: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나요?” (갈1:6-7)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선물의 관점으로 은혜를 설명합니다. 엡2:8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며 선물 받은 사람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에 은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은혜는 신앙 성장의 토양이기에 우리는 은혜를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이 은혜를 받았음에도 여기서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 증거는 다른 복음을 이 교회가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따랐던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느냐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다른 것을 섞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에다 율법을 섞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면 율법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율법 아래로 들어가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혼합주의는 이처럼 은혜로 시작해서 행위로 마치게 하는 형태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은혜의 복음은 처음과 마지막까지 은혜가 다스리게 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은혜의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나면 율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붙들어야만 우리는 은혜에서 떠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주일설교 7/25/2021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요16:33)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 현실은 전쟁터일 때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을까요?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평안을 체험하고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지극히 평안하셨는데, 그들은 안절부절 못할 뿐만 아니라 평온한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풍랑 때문에 평안을 잃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태풍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되면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평화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약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담대하라’는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어떻게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환난을 주는 세상에서 담대할 수가 있게 합니다.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환난 한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체험할 수가 있으며 환난 앞에서 담대할  때 더욱 강력해집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담대해질 수가 있습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면 신앙 성장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