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6/2020 사도행전8:4-8, “예수님의 발자취”

<오늘 설교 요약> 제목:“예수님의 발자취” (사도행전8:4-8)

힘들고 지치면 주저앉고 싶어지듯이, 교회에 슬픔과 고통이 몰아치면 새로운 힘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힘을 내고 있다. 특히, 빌립의 사역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째, 인간적인 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유대인인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간 모습을 보자. 유대 사회에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다. 그 룰을 깨고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간 빌립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교회는 어느 곳에 세워지든 인간적인 장벽을 만나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허물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영적 열매가 맺힌다. 사마리아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성령이 역사하신 결정적인 증거이다. 빌립 사역으로 영적 열매가 풍성히 열리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체험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 시대일지라도 영적 열매는 열린다. 셋째, 살리는 사역이다. 귀신이 쫓겨나고 불치병이 치료되는 일은 살리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이렇듯이 생명을 살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성령은 이 일을 하는 교회 위에 역사하신다. 이렇듯이 교회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를 때, 영적 축복을 받는데, 그 결과로 영적 희열을 체험한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처럼 교회는 영적 희열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교회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성령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성령의 기쁨이 교회 안을 가득채울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다.

07/19/2020 사도행전8:1-4, “복음 열정”

<오늘 설교 요약>                 제목:“복음 열정” (사도행전8:1-4)

초대 교회는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커다란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총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소중한 일꾼을 잃고, 교회 전체가 흩어지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일 등이다. 이 아픔들은 교회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한꺼번에 이 모든 고통들이 몰려왔다. 과연 견딜 수가 있을까?

이 시대 교회는 어떠한가? 다른 종류이나 교회가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다양한 아픔을 겪고 있다. 이 속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초대 교회는 우리에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4절을 보면,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흩어진 이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로서, 오순절 성령 체험과 3천명의 회심자들, 가난한 이를 위해 재산을 내놓는 일 등을 목격하기도 하고 동참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교회가 고통 속에 있고, 개인별로 고난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든지 상실감에 시달릴 수가 있다. 상실감은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는 감정을 갖게 한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복음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매우 인상적이다. 복음 열정이 전혀 꺼지지 않았다. 여기에 저자의 목적이 있다. 교회가 고통을 겪을 수 있지만 복음 열정만큼은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에게 복음 열정은 꺼진 적이 없다. 사도행전28장을 보면, 로마에서 집에 구금당했을 때에도 그는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복음 열정이 있는가? 지금도 예수님 이야기에 열정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한 번 복음 열정이 타오를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07/12/2020 사도행전7:54-60, “죽음 앞에서”

<오늘 설교 요약>제목:“죽음 앞에서” (사도행전7:54-60)

오늘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신앙의 참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스데반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무엇이 죽음 앞에서 그를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는가? 세 개의 단어, ‘부활, 확신, 용서’를 기억하자.

첫째, 그의 부활신앙이다. 죽음 앞에서 그는 하늘의 광경을 목격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 이것이 그가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했던 힘의 원천이다. 그는 평소에도 부활의 예수님을 믿었고 사람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 부활의 예수님을 본 것은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그에게 주었다. 죽음이 부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한 순간이다. 부활은 모든 신앙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는 강력한 영적 힘이다.

둘째, 구원의 확신이다. 스데반은 59절에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 한다. 이것은 초조와 불안, 의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서 외친 것이다. 그는 죽음이 예수님의 사랑에서 그를 끊어낼 수 없음을 확신했다. 이처럼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 죽음 앞에서 돌아보게 된다. 죽음 앞에서 이것은 우리 영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신앙요소이다.

셋째, 용서이다.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 한다. 돌을 던진 이들을 향해 용서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스데반 자신을 위한 영적 치료이다. 세상의 모든 미련을 다 정리한 증거가 용서이다. 용서는 죽음 앞에서 마지막 찌꺼기를 다 제거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부활, 확신, 용서는 죽음 앞에서도 우리를 당당하게 만들어준다.  

07/05/2020 사도행전 7:1-4,51-53, 영적 실력

제목:“영적 실력” (사도행전7:1-4,51-53)

스데반의 설교에 나타난 그의 영적 실력이 어떠한지를 통해 우리의 영성을 점검하고자 한다. 위기에 처한 스데반이 보여준 영성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첫째, 그의 감정 상태를 보자.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상태를 시편102:8은 매우 적절히 묘사한다. 그 때의 감정을 시편102:3-5은 세밀히 적고 있다. 하지만 스데반의 감정은 매우 차분한 상태이다. 아주 차분한 음성으로 자신이 할 말을 선포하고 있다. 그의 영성으로 감정을 통제한 것이다.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감정의 노예가 되면 영성이 무너진다. 분노의 감정으로 죄짓는 모습, 감정에 솔직해지라는 말에 속아 상처 주는 모습, 감정 스트레스를 풀라는 말에 속아 방탕에 빠지는 모습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둘째, 그의 성경 이해 능력이다. 하나님, 모세, 율법, 성전에 대한 그의 시각이 본문에 상세히 나온다. 평소 그가 얼마나 성경 이해력이 좋았는지를 보여준다. 코로나 시대에 성경과 친해져 성경에 푹 빠져 사는 경험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셋째, 그의 담대함이다. 그의 설교 말미에 청중을 향해 날카로운 적용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두려움을 극복한 담대함을 보여준다. 전혀 담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강의 담대함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실력이다. 감염의 공포에도 의연하게 신앙 생활해야 한다. 미래 불안에도 노심초사하지 말고 담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실력은 감정 상태, 성경이해 능력, 그리고 담대한 마음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06/28/2020 사도행전6:8-15,“제자의 삶”

제목:“제자의 삶” (사도행전6:8-15)

오늘은 스데반의 사역을 통해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은혜의 충만이다. 본문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을 소개한다. 영성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한 면만을 보고 평가할 수 없다. 스데반은 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평가될 정도로 인정받았다. 과연 은혜 충만은 어떤 뜻일까?

하나는 은혜가 계속 주입되는 삶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갈되지 않기에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은혜에 지배를 받는 삶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지배를 당하듯이. 이것은 행복한 지배를 받는 상태이다. 우리가 지금 은혜가 충만한지를 점검하자.

둘째, 고난 감수이다. 본문은 스데반이 거짓 증인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스데반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는 공격이다. 메신저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공격도 이미지 타격이 많다. 고집불통, 위선자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운다. 매우 치명적인 공격이다. 우리는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셋째, 마음의 안정이다. 본문은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말한다. 천사처럼 얼굴이 밝고 환하다는 뜻이다. 억울함과 분노의 얼굴이 아니다. 공포로 떨고 있는 얼굴도 아니다.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얼굴이 천사처럼 밝다. 마음의 안정 때문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마음이 평온했기에 천사의 얼굴과 같았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은혜가 고난에도 불구하고 더 충만한가? 고난 중에도 얼굴이 빛나는가? 그 정도로 마음의 안정이 되고 있는가?

06/21/2020 사도행전6:7, “교회의 힘”

제목: “교회의 힘” (사도행전6:7)

몸이 약해지면 체력을 보강하듯이 교회도 약해지면 힘을 키워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힘이 넘치는 모습일까요? 본문은 우리에게 명료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말씀의 확산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확산이 빠르다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는 매우 안좋은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말씀의 확산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숨은 공로 두 가지가 있는데, 교회의 기도와 실천입니다. 사도행전4:29은 교회의 기도, 31절은 교회의 실천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상황이 코로나로 인해 힘들지라도 말씀의 확산을 위한 기도와 실천을 쉬면 안됩니다.

둘째, 제자의 수 증가입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라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교회에 새로운 사람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손길과 더불어 교회가 제자 양육을 위해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28:19-20이 증거입니다.

셋째, 복종케 하는 능력입니다. 본문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합니다. 누가 복종했느냐면, 제사장들입니다. 사도행전4:1-3을 보면 이들은 교회를 핍박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복음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축된 교회에 커다란 힘을 실어주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교회는 복종케 하는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입니다.

결론으로 교회는 힘을 잃을 수 있지만 복음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오늘도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 제자, 복종의 능력으로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06/14/2020 요한복음20:19-20 “평안”

제목:“평안” (요한복음20:19-20)

예수님의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를 본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평안을 잃은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매위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평안은 상극이다. 코로나 감염 확산과 경제적 어려움, 미래 불안등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평안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제자들은 스스로 평안을 만들어야 했다. 문을 걸어잠그는 방식이다. 그들로서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안이 거기에는 없다. 놀라운 장면은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오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고 하신다.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인데, 평안의 회복을 가져다주신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다양한 이유로 예수님의 평안을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영적인 변화는 평안의 회복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제자들처럼 ‘주를 보고 기뻐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영적 희열인데, 여전히 두려운 상황에서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적인 여유를 갖게 된다. 어떤 근심과 걱정도 예수님의 평안으로 떨쳐버릴 수가 있다. 예수님의 평안이 마음을 차지하면 폭풍 속에서도 평안할 수가 있다. 세상의 거친 풍랑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할 때, 예수님의 평안은 우리를 지켜준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이 평안을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가 있다.

06/07/2020 출애굽기 16:3 “안전”

제목:“안전” (출애굽기 16:3)

오늘 이 시대 최대의 관심사는 ‘안전’이다. 코로나로 인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현실에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할까?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안전 문제로 신앙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애굽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하나님과 모세에게 압박하고 있다. 과거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었다. 그런데 광야를 겪어보니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해주셨고 홍해도 건너게 하셨기에 광야의 어려움 정도는 얼마든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란 믿음이 그들에겐 없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지금 애굽은 기억하고 하나님은 잊어버린 상태이다. 안전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과정에서 무엇을 배워야 했는가? 어디가 안전하고 어떻게 해야 안전한가 보다 하나님이 곧 안전이심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해지니 하나님이 도구화되고 하나님 무용론이란 함정에 빠졌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가장 안전한 나라에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불안한 곳이 되었다. 혹시 하나님 무용론이 재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소용없고, 아무리 불안한 사회일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면 든든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 외에 다른 안전은 필요없다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05/31/2020 마태복음10:28 “두려움”

코로나 시대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설교를 몇 주간 하고자 한다. 신앙의 형태에 큰 변화가 생겼다. 현장 예배를 중단한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변해서는 안된다. 이와 관련해서 두려움을 살펴보자.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일상뿐 아니라 신앙 생활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는가?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협할 때 두려운 존재가 된다. 코로나 이전에도 바이러스는 많았다. 위협이 되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은 전염성이 너무 강력해서 우리의 턱밑까지 위협을 가하고 있다.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방치하면 신앙 생활이 어려워진다. 코로나 두려움이 커지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코로나를 두려워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작아진다. 이 둘은 상극이다. 반비례 관계이다. 한 쪽이 커지면 다른 쪽은 작아진다. 어떻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면 된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면 안된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단지 육체만 위협하는 바이러스 공포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된다. 우리는 백신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 신앙을 키워야 한다. 바이러스 공포를 잠재울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켜야 한다.

05/24/2020 에베소서 6:17, 영적 무기(6) “성령의 검”

제목:영적 무기(6) “성령의 검” (에베소서6:17)

오늘은 영적 무기 마지막인 ‘성령의 검’을 살펴보자. 이것은 공격용 무기이다. 앞의 다섯 가지 무기는 방어용이다. 적과 싸울 때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가 없다. 방어를 철저히 하면서 적재적소에 공격을 가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한다. 검의 생명력은 강함과 예리함에 달려 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도 강하고 예리하다. 히브리서4:12은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다. 사람의 영혼과 마음까지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예리하다. 성령은 이렇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사용하신다. 디모데후서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말씀에 오류가 없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1:6에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교회를 칭찬한다. 또한 고린도전서2:4에서, ‘내 말과 전도함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한다. 원수인 마귀는 말씀을 왜곡시키고 오용하게 해서 무디게 만든다.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자의적으로 해석하도록 유혹한다. 또한 성경을 잘못 사용하도록 만든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잘못 적용하게 한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자. 말씀을 적극적으로 대하자. 항상 가까이 하면서 능동적으로 읽고 실제로 실천하자. 우리는 말씀을 책으로 갖고 있다. 이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말씀을 가볍게 여긴다면 이것은 우리의 약점이 된다. 우리는 공격용 무기인 성령의 검을 여기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훈련을 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