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7/2020 에베소서6:17, 영적 무기(5) “구원의 투구”

제목:영적 무기(5) “구원의 투구” (에베소서6:17)

다섯 번째 영적 무기인 ‘구원의 투구’를 살펴보자.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들을 우리는 철저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영적 무기인 ‘구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점검하자. 구원을 보통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우리는 영적 무기로써 ‘구원’을 봐야 한다. 우리는 이 무기로 얼마든지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있다. 마귀는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공격하는가? 교회를 다니는 이들로 구원받지 못하게 방해한다. 고린도후서4:4에서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미혹한다고 말한다. 교회를 다니지만 구원을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공격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공격한다. 두 가지 방식인데,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해서 구원의 행복을 빼앗아간다. 또한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죄를 짓고 회개하면 된다는 식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 이것도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는 공격 방식이다. 우리는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 건강하고 균형잡힌 구원관이 필요하다. 에베소서2:8-10은 그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다. 이것이 죄책감을 이기는 방법이다. 또한 구원받은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올바른 구원관이다. 이처럼 구원은 영적 무기로 마귀의 공격을 적절히 막아낸다. 우리는 이 영적 무기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

05-10-2020 에베소서6:16, 영적 무기(4) “믿음의 방패”

제목:영적 무기(4) “믿음의 방패” (에베소서6:16)

오늘은 영적 무기 네번째인 “믿음의 방패’를 살펴보자. 믿음이 어떻게 영적인 무기인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를 보자. 우선 믿음이 영적인 무기임을 잊지 말자. 믿음은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는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엡3:12,17;4:13에 보면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과연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믿음을 방패로 사용해야 한다. 무엇을 막아내는 방패인가?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이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불신앙’이다.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불신앙이란 불화살을 무차별적으로 쏜다.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이스라엘, 신약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공격을 받아 신앙적으로 상처를 크게 입었다. 불신앙의 뿌리는 무엇인가? 의심이다. 작은 의심일지라도 처리하지 않으면 불신앙으로 커진다(약1:6). 마지막으로 과연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마귀의 불신앙이란 불화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한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우리의 믿음을 더해달라’고 했다. 히브리서는 11장에서 믿음의 선배들을 소개한 후 12:2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한다.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 믿음을 키우지 않으면 마귀의 공격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믿음을 키우는 중이다. 한시도 경계심을 풀지 말고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05-03-2020 엡6:15, 영적무기(3)“평화의 복음”

제목:영적 무기(3) “평화의 복음” (에베소서6:15)

영적 무기의 세 번째인 ‘평화의 복음’에 대해 바울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합니다. ‘평안’은 ‘평화’입니다. 신을 신는 행위는 로마 군인이 신던 신발과 관련이 있습니다. 적과 맞서 후퇴하지 않고 버티는 의미와 앞으로 전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복음’으로 무장해야 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를 바울의 시각으로 에베소서 안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2:14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평화이심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2:16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셨음을 밝힙니다. 하나님과의 평화, 우리 사이의 평화를 이루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루셨던 평화입니다. 우리는 이 평화의 복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평화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듣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하고 이 복음이 주는 열매인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우리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무기와 혼연일체가 되는 길입니다. 그래야 적과 맞서 자유자재로 이 무기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적인 마귀는 지금도 이 무기를 무력화시켜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건강의 복음, 성공의 복음, 자기 사랑의 복음, 물질 축복의 복음이란 왜곡된 것으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평화의 복음을 우리는 사수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질적이고 왜곡된 다른 복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04-26-2020 엡6:13-14, 영적무기(2)“의로움”

제목:영적 무기(2) “의로움” (에베소서6:13-14)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영적 무기를 갖추어야 한다. 오늘은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는 두 번째 무기를 살펴보자. 바울은 ‘의’를 ‘하나님과의
관계’ 로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인가? 로마서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라 말한다. 엡2:1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하며, 엡2:3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가? 우리의 노력으로 안된다.
엡2:13은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간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되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에베소서4:13,15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까지 자라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적
성장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된 이후에 우리 안에 나타나야 할 변화이다.
하지만 그 길이 좁고 힘들 수 있다. 그러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가 힘들다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하나님이 절대 허락하시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벗어나서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기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04-19-2020 엡6:12-14, 영적무기(1)“진리”

<오늘 설교 요약> 제목:영적 무기(1) “진리” (에베소서6:12-14)
우리는 항상 영적 전쟁 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적 무기들이 있을까요? 오늘은
첫 번째 무기인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진리의 허리 띠’를 갖추라
합니다. 허리 띠란 벨트의 기능을 말하는데, 옷 전체를 묶어주는 역할과
허리를 튼튼히 받쳐주는 기능입니다. 진리란 허리 띠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진리에 대해 바울은 에베소서4:21에서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기준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4:6에서 ‘내가 곧
진리’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무엇을 공격할까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집중
공격합니다. 요즘은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인데 이렇게 말하면서 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아주 교묘한 전략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엡4:21에서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께 딱 붙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껌딱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듣고 예수님 안에서 배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진리의 허리 띠를 단단히 매고 있는
것입니다.

04-12-2020 고전15:3-4, “부활하신 예수님”

제목: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15:3-4)

부활주일인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는 기념한다. 기독교의 심장인 부활은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여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수호할 것인가?

우선, 부활은 이미 일어났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자. 사복음서는 부활의 역사적인 장면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물론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지만 예수님만이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고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으셨다.

다음으로 “성경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자. 본문은 두 번에 걸쳐 ‘성경대로’를 반복한다. 구약 성경인데 부활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사람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부활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이라 한다. 들었거나 수집했거나 심사숙고해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였다. 보물을 찾는 것과 선물을 받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선물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전하는 사람이 됨을 기억하자.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한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파워이다. (나눔) 부활을 받아들이고 부활 신앙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서로 나눠보자.

04_05_2020 벧전2_24-25 “고난의 유익”

<오늘 설교 요약>제목: 고난의 유익 (벧전2:24-25)

종려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베드로의 시각으로 기념하고자 한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베드로는 그가 깨달은 것을 오늘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우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명심하자. 기독교 신앙은 허구가 아닌 진실 위에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음”을 기억하자. 고난과 죽음은 예수님이 친히 겪으셨는데, 모두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사실과 하나님의 뜻이 밝혀졌는데, 과연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는가? 믿는다면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끼치는 유익의 실체이다. 하나는 존재의 변화이다. ‘전에는 길을 잃은 양이었는데, 이제는 목자에게 돌아왔다.’ 우리가 뭔가 기여한 것이 없다. 그런데 존재가 바뀌었다. 다른 하나는 삶의 변화이다. 이것은 존재가 바뀐 후에 점차적으로 일어난다. 바뀐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이다. 죄와의 관계를 끊고, 의와의 관계를 살리는 삶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믿으면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산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삶에서, 평생에 걸쳐서 일어난다.  

03_29_2020 엡6_10-13 “영적전쟁”

제목: 영적 전쟁 (엡6:10-13)

성령의 열매에 이어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 한다. 영적 전쟁의 적은 마귀이다. 마귀는 보이지 않지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되 그 힘이 막강하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성도, 활기찬 교회 이루기 위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서 이 땅에서 활동한다. 죄와 죽음을 무기로 세상을 통치하는 마귀의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멸하셨다. 과연 우리는 그에 맞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이다. 어떻게 대적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질 것을 당부한다.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단지 우리의 능력과 실력으로 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져야 한다.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면 무조건 진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 강해질 수가 있는가? 본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무장이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느냐에 대해 바울은 세밀하게 가르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영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강해짐을 명심하자. (나눔) 여러분은 영적 승리를 위해 어떤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03_22_2020 갈 5:22-24 “절제의 열매”

제목: 절제의 열매 (갈5:22-24)

우리는 절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절제와 무절제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절제가 필요하실까요? 하나님은 완벽하시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절제하셔야 했을까요? 죄가 없으신 분으로 사셨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절제는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세 가지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육체의 정욕, 혀, 분노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유혹들이기에 더욱 절제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신앙이 최고의 수준에 있어도 찾아옵니다. 다윗은 최상의 신앙 상태에서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다. 남의 아내인 밧세바를 강제로 취했습니다. 혀의 절제는 언어 생활인데, 야고보는 ‘혀는 불의의 세계’라 했고,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절제력을 발휘해야 할 영역인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분노는 반드시 승리해야 할 영역입니다. 분노의 표출로 사람들이 상처입기에 신앙인으로서 성령의 힘에 의존하여 그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분노가 거룩해 보여도 통제하지 않으면 불의를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절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심으시는 거룩한 열매입니다. 절제는 우리로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나눔) 여러분의 절제의 삶은 어떠한가요? 어떤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한지를 서로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03_15_2020 갈 6_1 “온유의 열매”

제목: 온유의 열매 (갈6:1)

온유함에는 부러움이란 좋은 이미지가 있다. 반면 왜곡된 이미지도 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온유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하셨다. 그분의 삶에서 온유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수용성과 비타협성이다. 아무리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어도 회개하면 받아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죄와 타협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죄를 아주 강렬하게 비판하셨다. 독사의 새끼들이라 하실 정도였다. 이렇듯이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분의 온유하심을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이유이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가 우리 안에 나타나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를 나타낸다. 이것은 수용성이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범죄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대할 수가 있다. 이것은 비타협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온유함은 사람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죄인에게 진노하시지만 회개한 자를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자. 온유함은 겸손과 쌍둥이이다. 겸손해야 온유할 수가 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이다. 이런 겸손이 우리로 상대에게 온유함을 나타내게 한다.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가 매일 묵상해야 한다. 온유함은 교회로 활기 넘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