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29_2020 엡6_10-13 “영적전쟁”

제목: 영적 전쟁 (엡6:10-13)

성령의 열매에 이어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 한다. 영적 전쟁의 적은 마귀이다. 마귀는 보이지 않지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되 그 힘이 막강하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성도, 활기찬 교회 이루기 위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서 이 땅에서 활동한다. 죄와 죽음을 무기로 세상을 통치하는 마귀의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멸하셨다. 과연 우리는 그에 맞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이다. 어떻게 대적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질 것을 당부한다.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단지 우리의 능력과 실력으로 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져야 한다.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면 무조건 진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 강해질 수가 있는가? 본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무장이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느냐에 대해 바울은 세밀하게 가르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영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강해짐을 명심하자. (나눔) 여러분은 영적 승리를 위해 어떤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03_22_2020 갈 5:22-24 “절제의 열매”

제목: 절제의 열매 (갈5:22-24)

우리는 절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절제와 무절제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절제가 필요하실까요? 하나님은 완벽하시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절제하셔야 했을까요? 죄가 없으신 분으로 사셨기에 절제를 연습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절제는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세 가지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육체의 정욕, 혀, 분노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유혹들이기에 더욱 절제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신앙이 최고의 수준에 있어도 찾아옵니다. 다윗은 최상의 신앙 상태에서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다. 남의 아내인 밧세바를 강제로 취했습니다. 혀의 절제는 언어 생활인데, 야고보는 ‘혀는 불의의 세계’라 했고,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절제력을 발휘해야 할 영역인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분노는 반드시 승리해야 할 영역입니다. 분노의 표출로 사람들이 상처입기에 신앙인으로서 성령의 힘에 의존하여 그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분노가 거룩해 보여도 통제하지 않으면 불의를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절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심으시는 거룩한 열매입니다. 절제는 우리로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나눔) 여러분의 절제의 삶은 어떠한가요? 어떤 영역에서 절제가 필요한지를 서로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03_15_2020 갈 6_1 “온유의 열매”

제목: 온유의 열매 (갈6:1)

온유함에는 부러움이란 좋은 이미지가 있다. 반면 왜곡된 이미지도 있다. 과연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온유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하셨다. 그분의 삶에서 온유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수용성과 비타협성이다. 아무리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어도 회개하면 받아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죄와 타협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죄를 아주 강렬하게 비판하셨다. 독사의 새끼들이라 하실 정도였다. 이렇듯이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분의 온유하심을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이유이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가 우리 안에 나타나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를 나타낸다. 이것은 수용성이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범죄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대할 수가 있다. 이것은 비타협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온유함은 사람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죄인에게 진노하시지만 회개한 자를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자. 온유함은 겸손과 쌍둥이이다. 겸손해야 온유할 수가 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이다. 이런 겸손이 우리로 상대에게 온유함을 나타내게 한다. 예수님의 온유는 우리가 매일 묵상해야 한다. 온유함은 교회로 활기 넘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03_08_2020 고후 1_18, 20 “충성의 열매”

제목: 충성의 열매 (고후1:18, 20)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진실함이 증명될 때이다. 진실하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은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갈 때 이 열매가 열린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매우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심과 그러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것을 증명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입으로 내신 말씀을 헛되이 돌아오게 하지 않으신다. 구약 안에서뿐 아니라 신약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메시야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을 완벽히 성취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얼마나 그분을 신뢰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또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주목하자. 우리가 기도할 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대로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것을 증명하신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이 열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듯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달란트 비유처럼 적은 일에 충성할 수 있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능력은 미약하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우리의 충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순종하는 것이다. 환경을 이기는 신실함은 성령의 역사를 입증한다. 이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하자.

03_01_2020 살후2_16-17 “양선의 열매”

제목: 양선의 열매 (살후2:16-17)

나쁜 뉴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을 행하면서 살고 있다. 성령의 역사로 선을 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본문은 선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문16절은 사랑과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을 말하는데, 선하신 하나님의 진면목이다.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가에 대해 성경은 초지일관 선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한 빛만 있으신 분이 선하신 하나님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요8:44은 마귀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존재가 마귀이며 세상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악에 물들어 있는 상태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죄로부터 깨끗해질 수 있는 살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성령으로 마음에 심겨진 우리는 선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본문은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로 선을 행하도록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믿음은 행함을 배척하지 않는다. 믿음은 행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선행을 위해 새로 지음받은 존재가 교회임을 잊지 말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을 행해야 한다. 선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반영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선함이 교회 안에 가득해지도록 해야 한다.

02_23_2020 엡2_5-7 “자비의 열매”

제목: 자비의 열매 (엡2:5-7)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위는 자비에 속한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무엇이 다른가? 출발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태도이다. 본문 7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는 하나님의 자비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우리 힘으로는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이 죽음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죽은 상태인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 있다. 우리의 역할은 전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는가? 그렇다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와 머리로만 아는 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머리로만 알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타인에게 나타내지 못한다. 받은 은혜를 주는 삶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간다. 삭게오는 자비하심을 체험한 사람의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비의 마음이 가득넘칠 수 있다. 또한 룻이 보아스로부터 받았던 친절은 자비의 본질을 드러낸다. 상대방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조건을 따지지 않고 도움을 주는 마음은 자비의 본질이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는 예수 안에서 가장 화려하게 드러난다. 예수와 함께 살아난 우리는 자비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02_16_2020 벧후 3_9 “인내의 열매”

제목: 인내의 열매 (벧후3:9)

사람은 인내하면서 살아간다. 성령의 열매로서 인내는 무엇이 다른가?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내는 심판과 멸망을 당장 실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멸망’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구약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말한다.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멸망 등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임했음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외쳤다. 심판과 멸망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인의 구원이다.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잘 보여준다. 요한복음3:17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이유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인내를 비웃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비웃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인내를 불평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신실한 신자들은 심판과 멸망을 실감하기에 하나님의 인내를 찬양하고 기뻐한다.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 안에 가득채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예수님을 소망해야 한다. 이유는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 믿음은 인내로서 신앙 생활하게 한다. 인내로서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신앙의 인내는 우리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게 한다.

02_09_2020 엡 2_14-18 “화평의 열매”

제목: 화평의 열매 (엡2:14-18)

성령의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성령을 따르는 이들 속에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화평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성령은 평화를 교회 속에 심으신다. 과연 어떤 형태의 평화인가? 우선,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선물로 주어지는데, 우리의 힘과 실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진다. 보상이 아닌 선물로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십자가로 소멸하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기에 선물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인 인류의 모습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셨다. 과연 이것을 받아들이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가볍게 여기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는 실천하는 평화로 우리 안에 나타난다.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버린 십자가의 능력은 교회를 변화시킨다. 여러 형태로 우리 사이를 막아선 벽들을 십자가는 지금도 허물고 있다. 예수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고, 한 몸을 이루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교회가 된다. 성경은 우리가 평화를 이루어가야 함을 강력히 호소한다.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것을 당부한다. 이렇듯이 성령은 화평을 교회 속에 심으시고 막힌 벽들을 허물고 계신다. 예배 및 모임

02_02_2020 살전 5_16-18 “희락의 열매”

제목: 희락의 열매 (살전5:16-18)

성령의 두 번째 열매인 ‘희락’은 성령을 따르는 교회의 모습이다. 기쁨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는 일이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성령의 기쁨을 체험한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이사야는 영영한 희락을 맛보았고, 다윗은 기쁨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했다. 바울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교회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먼저 생각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희락은 교회를 변화시킨다. 첫째, 축제와 같은 예배를 드린다. 둘째, 치유를 경험한다. 셋째, 관계 회복이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교회는 언제든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영적 침체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워 이겼지만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슬럼프에 빠져 전혀 힘을 내지 못했다. 다윗은 간음죄를 지은 후 영적 슬럼프에 빠졌다.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또 다른 위험은 세상 재미의 추구이다. 성령의 기쁨은 세상 재미로 인해 무의미해진다. 데마는 세상 재미에 빠져 복음을 위한 삶을 포기했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공격 앞에서 성령의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바울의 권면처럼,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으로 인한 희열을 체험하면서 교회는 거룩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예배 및 모임 안내 주일예배 주일 1:00 PM 새벽예배 화-금 5:30 AM / 토 6:00

01_26_2020 요일 4:11 “사랑의 열매”*

제목: 사랑의 열매 (요일4:11)

성령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삶 속에 열린다. 교회는 이 열매로 인해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된다. 첫 열매는 ‘사랑’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심으시는 사랑이란 열매가 있다. 그것을 본문이 가장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이다. 이 둘의 순서는 항상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어떻게 사랑하셨느냐 전에 우리의 반응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펼쳐졌는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이다. 왜 예수님이 오셨는가?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우리가 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하나님 사랑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죄사함이 크게 느껴지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근거로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한다. 우리의 사랑은 일방적이면 안된다. 사랑은 매우 실제적이어야 한다. 또한 사랑의 대상이 포괄적이어야 한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사랑이 가르쳐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은 교회를 거룩하고 활기 넘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