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4/11/2021 요12:27-28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마음이 힘들 정도로 고생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신 모습을 본문이 보여줍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는 마음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 지를 알려줍니다.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을 져야 하는 삶의 무게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유로 삶의 무게를 지고 삽니다. 그로 인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게 됩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마라’(괴로움)라 할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마음의 괴로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는 호소를 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10:1과 13:1은 감정적으로 하나님께 애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왜 멀리하시는지, 왜 숨어계시는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둘째, 신앙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 이후에 곧바로 이 때를 위하여 왔다고 하시는 이 모습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어떤 결단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신앙 생활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크게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더욱 더 신앙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마음 고생은 괴롭지만 슬기롭게 이겨낸다면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03/22/2021 “불안에 떨고 있나요?” (벧전5:7)

어느날 시작된 통증으로 매일 불안속에서 지낸 어떤 유명한 체육인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불안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감정 상태로서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발생합니다. 그 원인은 두려움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무언가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깁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의식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를 극복하고 신앙 성장을 이룰 수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주께 맡기라’는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그것을 주께 맡기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염려와 주께 맡김은 서로 반비례합니다. 한 쪽을 키우면 다른 쪽은 줄어듭니다. 또한 주께 맡기라면서 주의 돌보심을 이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의 돌봄이 있기에 염려를 주께 맡길 수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의 돌봄을 체험할 때에 더욱 더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께 맡기는 것일까요? 바울은 빌4:6에서,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했습니다. 염려하는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신앙 훈련으로서 매일 염려와 싸우는 실제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주께 맡기는 훈련을 하면서 신앙적으로 성장해나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03/14/2021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요?” (시73:1-3)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악인을 처벌하지 않느냐는 불평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불편하게 생각한 신앙인이 쓴 시편이 오늘 읽은 내용입니다. 이는 성경의 보편적인 고민이기도 합니다. 전도서나 하박국서를 보면 죄인의 형통으로 인해 사람들이 악을 더 담대히 행한다고 하면서 왜 하나님이 방관 또는 잠잠하시느냐고 탄식을 쏟아냅니다. 신앙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신앙 무용론과 신앙 의욕 저하에 시달리게 됩니다.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신앙 자체가 붕괴될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거의 넘어지고 미끄러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신앙의 뿌리가 뽑힐 정도로 힘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인은 이것을 무심하게 넘기면 안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면 불공평에 대한 시각이 달라집니다. 둘째, 악인의 종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장은 형통하는 듯이 보이나 주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거리 좁히기입니다. 이는 악인의 형통으로 멀어진 관계의 회복을 뜻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신앙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주일설교 03/07/2021 “내 기도를 듣고 계시나요?” (눅18:7-8)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신앙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신앙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쿡쿡 쑤시는 신경통과 같은 것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도 응답과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입장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비유를 든다면, 우산 장수는 비가 오기를 기도하고, 소금 장수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한 쪽은 감사할 것이고 다른 쪽은 실망할 것입니다. 이렇듯이 기도 응답을 생각할 때 우리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 응답이 없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본문은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이 없을 때 기도를 쉬게 됩니다.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기도를 계속해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을 때 실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깊어지면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의 반응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으면 자꾸 믿음이 흔들립니다. 믿음의 반응이 줄어듭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늦어질수록 우리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합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기도 응답이 늦어지는 것을 신앙 성장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02/28/2021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러워요” (요일4:9-10)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야단을 쳐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을 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알지만 이런 경우에는 사랑받는 것이 맞나란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이런 의심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나 우리는 살면서 그 사랑이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신앙 성장의 멈춤 현상이 이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실까요? 성경은 넘치는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이것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돌봄을 의심했듯이 우리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사랑하신다면서 왜 고통을 제거해주지 않으시는 걸까란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것을 방치할 때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독소들이 가득차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그릇된 접근은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해결책은 내 편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증거합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살려내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깊이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신앙 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이끌어줍니다.  

주일설교 02/21/2021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요” (로마서8:1)

신앙 성장을 위해 어디에서 성장이 멈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오늘은 죄책감이 어떻게 신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인 죄책감은 무언가 잘못한 일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어떤 기독교 심리학자는 이것을 우리 일상의 ‘조미료’라고 했습니다. 필요하나 과하면 해롭다는 의미입니다. 신자로서 느끼는 특별한 죄책감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이런 죄책감은 신자임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지나친 죄책감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못하도록 큰 장애를 일으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이를 조절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죄를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를 성경적으로 확립해야 합니다. 미가서 7:19, 요한일서 1:9은 매우 중요한 성경 구절입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서 우리 죄가 얼마나 확실히 해결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1과 5:6이 대표적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 안에서 용서받았기에 정죄함이 결코 없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렇듯이 신자는 죄책감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신앙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의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의학에만 의존하다가 신앙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얼마든지 죄책감을 조절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02/14/2021 “하나님을 잘 모르겠어요” (호세아6:3)

은혜속에 성장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혜 받았음에도 왜 신앙 성장이 멈춘 것일까란 질문입니다. 그 중에 오늘 다룰 주제는 ‘하나님을 모르겠어요’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관심했던 이스라엘을 향해 외친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관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자는 호세아의 호소는 이런 마음을 전달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배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지적으로 하나님을 배우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 뜻, 힘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아는 삶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살아계시고, 행동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은 죽었다는 세상의 목소리에 맞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날마다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주장에 맞서서 실제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완결되었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 우리는 관심과 배움, 인격을 다 동원하고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행동하시고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주일설교 02/07/2021 “말씀으로 강해지려면” (행13:42-46)

말씀으로 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첫째, 말씀의 매력에 빠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난 후 다시 말씀 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변 이웃들을 초청해서 함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장면은 말씀의 매력에 사람들이 깊이 빠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교회에 커다란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교회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매력을 아는 이들은 자주 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둘째, 말씀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에 대한 신뢰가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컸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다닌 모습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니라 말씀이 주는 능력을 경험했기에 신뢰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 나타내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할 때에 그 믿음이 주변에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씀의 흐름이 절대 막히지 않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씀을 반대하는 이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냈지만 말씀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본문이 증거합니다. 이방인에게로 흘러가는 말씀의 저력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이 말씀을 막는 세력은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의 흐름을 막을 세력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는 우리 교회에도 풍성히 나타나 강한 신앙으로 이끌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01/31/2021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행13:15-17,23,38-41)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본문은 그의 설교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 무엇을 들어야 하느냐란 중요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본문은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죄로 오염된 세상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모습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 광야 40년 이야기, 가나안 정복 이야기, 사사들과 왕들의 이야기 끝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신 것을 설교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둘째,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완성하셨는지를 바울은 설파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완벽한 것으로 다른 구원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이야기와 예수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됨을 보여줍니다. 바울도 그의 청중에게 하나님과 예수님 이야기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데, 우리는 특별히 불신앙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불신앙을 이기고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나님과 예수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 이야기를 듣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