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09/18/2022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히다” (행20:32)

오늘 본문을 보면,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힌 바울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은혜의 말씀의 위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말씀에 교회를 맡기고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이 교회 전체를 휘감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 은혜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말씀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은혜의 말씀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은혜와 신앙 성장은 필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는’ 은혜의 말씀을 말합니다. 은혜가 사람들을 세웁니다. 교회로 강하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성경은 은혜로 성장한 신앙인들을 수없이 보여줍니다. 이런 예들을 통해 우리는 신앙 성장에서 은혜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열매로는, 은혜의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은혜와 거룩함의 필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의 말씀으로 인해 교회가 거룩해진다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거룩이란 하나의 행동이나, 우리의 완벽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품입니다. 은혜의 체험은 우리로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은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를 체험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릴 것입니다. 

주일설교 09/11/2022 “은혜 안에 머물려면” (창3:1-3)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은혜’란 시각으로 보고자 합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충만한 곳입니다. 이 곳에서 산 아담과 하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서로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은혜로 가득했습니다.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느냐입니다. 이를 위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 사건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은혜를 어떻게 상실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뱀은 의심의 씨앗을 하와의 마음에 심어놓아 은혜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말을 해서 하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을 죽을까 한다는 말로 하와는 바꿨습니다. 의심의 씨앗이 자라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뱀은 거짓된 확신을 심어놓아 은혜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두 가지 거짓 확신을 심었습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거짓 확신과 하나님은 불공평하다는 거짓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을 거부하게 만들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에서 멀어지고, 떠나게 하는 거센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를 이겨내야만 합니다.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설교 08/28/2022 “영적으로 무장하는 시간” (행20:29-31)

오늘은 부흥회를 하는 목적으로 ‘영적으로 무장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적 무장을 해야 하는 것은 적의 공격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적에 대해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외부의 적은 ‘사나운 이리’가
양 떼에 들어와 공격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내부의 적은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단 사상이나 자기 세력화로 분란을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으로 무장해야 할까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21절,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라고 당부합니다. 교회 전체가 영적인 공격에
맞서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영적
무장을 위해 자기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가 절실합니다.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란
기도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 시험에서 철저하게 말씀으로 적과
싸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영적 무장은 신앙
생활에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부흥회는 영적 무장을 하는 실제적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08/21/2022 “우리 영혼의 건강 상태” (시편42:2)

부흥회를 코 앞에 두고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본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흥회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점검해야 합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면 기대감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변화를 주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부흥회를 통해
우리 영혼 깊은 곳까지 변화시키실 것을 고대해야 합니다. 부흥회는 영혼
상태를 점검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한 후에 서로간에 거리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의 거리도 얼마든지 멀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 상태가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본문 시인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뼈 환상을 통해 신앙인들이 얼마든지 영적으로 매마를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갈망의 깊이가 더해져야 합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깊이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공허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내면을 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부흥회를 고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 영혼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고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깊은 영역까지 성령의 능력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주일설교 8/7/2022 “귀하디 귀한 교회” (행20:28)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시각이 본문에 나옵니다.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실천입니다. 본질은 세 가지인데,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이 세 가지는 교회의 변하지 않는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며, 목숨 던지고 사신 교회이며, 성령으로 이끄시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이렇다면, 교회는 어떤 영적 움직임이 필요할까요? 절제의 삶과
보살피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삼가라’고 권면하듯이 교회는 절제가
가득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 마지막 열매로 ‘절제’를 말한
것처럼 절제는 모든 좋은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또한 성령이 감독자를 삼고 교회를 보살피게 했다는 바울의
권면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보살핌은 양육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처럼
교회는 서로를 돌봐야 합니다. 돌봄은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한 쪽의
일방적인 돌봄은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랑이라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긴 바울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서로를 품어야 합니다. 교회는 귀하디 귀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서로 조심하고 서로 보살핀다면 교회는 건강해질
것입니다. 우리 시대 교회는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7/31/2022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 (행20:25-27)

하나님 나라는 바울에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하나님 나라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오직 세상 나라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엄연히 두 나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시작과 중간, 마지막까지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나라가 최고로
중요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그 자체이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 나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 나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도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중요시 여기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입니다. 우리 삶을 채우는 모든 요소에서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07/24/2022 “경건과 기도의 생활” (시4:3)

태어난 아기가 자라듯이 신앙도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 성장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원인을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확신이 깨질 때와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지 못할 때입니다. 경건 생활을 가로막는 것은 ‘경건한들
좋은 것이 없다’는 불신 때문입니다. 경건으로 인해 손해와 피해를 본 성경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경험이 되면 경건을 포기하게 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처럼 위기 속에서 경건한 자를 구출하시는
하나님이셔야 경건 생활의 분명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우리의 인식
때문입니다. 보호하지 않으시면 주를 위해 경건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경건을 항상
유익이 있느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기도 생활을 못하게 막는
장애물은 기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도 응답을 받은 경험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런 쓴 경험이 쌓이면 기도 경건 생활이 중단되고 맙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의 약점을 잘 알기에 기도 응답 받은 사람들의 경험 이야기를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과부 이야기를 통해 항상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말 것을 예수님은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분명한 경험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건과 기도로
신앙 성장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