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9/13/2020 사도행전9:19-25 “달라진 삶”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큰 충격 속에서 삼 일동안 금식 기도하던 사울은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의 과거를 안다면 그의 달라짐이 얼마나 컸는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장 부끄러워했던 사람입니다. 신성 모독과 십자가 죽음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도 달라지게 만들었나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 고백의 무게를 그는 너무도 크게 느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너무 익숙해진 말이라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은 아닌가요? 말의 무게는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은 익숙해지면 식상해지고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란 말도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지켜야 할 진리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자랑이 커지면 어떤 난관도 우리는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장벽도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사울은 유대인들의 공격 앞에서 오히려 힘을 더 얻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울수록 예수님을 더 의지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가 갖고 있어야 할 영적인 파워입니다.

주일설교 9/06/2020 사도행전9:10-19 “넘치는 은혜”

<오늘 설교 요약>                 제목:“넘치는 은혜” (사도행전9:10-19)

사울은 큰 충격으로 앞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음식과 물을 먹지 않고 지냅니다. 이 시간을 절망이 아닌 회복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회복하는 동안 주의 은혜를 받는데, 세 가지 방식입니다. 첫째, 주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아나니아를 통해 주님이 자신을 회복시키고자 하심을 알게 된 사울이 느꼈을 감동이 얼마나 컸을까요? 구약에서 야곱도 홀로 있을 때에 주님이 꿈에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시는데 그가 깨달은 것은 주님의 세밀한 배려입니다. 주님이 이렇게도 역사하셔서 힘을 주시는구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엘리야도 절망에 있을 때 주의 천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주의 은혜는 세밀한 배려로 나타납니다. 둘째, 자격없음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자격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그를 사용하시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사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자격 없는 자신을 쓰시겠다는 주의 은혜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자신이 자격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셋째, 소명 의식입니다. 사울은 주님이 자신을 선택하셨음을 알았습니다. 15절, ‘택한 나의 그릇’이란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선택하실 수가 있느냐란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사울의 경우는 그런 마음이 훨씬 더 컸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명 의식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길입니다. 이처럼 회복은 주의 은혜의 풍성함에서 나옵니다. 힘들수록 우리는 주의 은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주일설교 8/30/2020 사도행전9:1-9 “새로운 시작”

<오늘 설교 요약>제목:“새로운 시작” (사도행전9:1-9)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 질문이다. 가장 크게 변한 성경의 인물이 바울이다. 오늘 본문은 그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을 담고 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그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를 없애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의 유일신 신앙 때문인데, 신명기6:4은 유일신 신앙의 초석이다. 행22:3은 바울 자신의 말로 유대교 신앙이 무엇이었는지가 표현된다. 이 관점에서 교회의 예수 신앙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사울은 신앙을 갖고 나서도 이런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갑자기 일어났다. 하늘에서 빛이 그를 둘러 비추고 음성이 들리는 방식으로 일어났는데,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생긴 점이다. 그동안 이것을 극구 부정한 사울에게는 놀라운 변화이다. 우리의 신앙도 부활의 예수님을 믿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이것을 우리는 자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사울은 ‘네가 행할 일’을 알게 될 것이라 했는데, 행26:18이 그 증거이다. 사울은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새로운 인생이 된 것이다. 빌립보서3:7-8에서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놀라운 말을 한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나면 이런 새로운 인생관이 형성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위한 인생은 계속된다. 오늘도 우리는 이 신앙을 굳건히 붙들어야 한다. 

주일설교 8/23/2020 사도행전 8:26-36 “신앙 대화하기”

<오늘 설교 요약>제목:“신앙 대화하기” (사도행전8:26-36)

오늘 본문은 빌립과 내시가 성경을 통해 신앙 대화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앙 대화에 필요한 세 가지 필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성경을 읽을 수 있느냐이다. 내시는 수레 안에서 구약 성경을 읽고 있었다. 빌립도 평소 성경을 읽는 전도자였다. 이 둘이 성령의 지시로 만났을 때 성경 읽는 내용으로 서로 대화를 하게 된다. 성경 읽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방해를 받는데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 읽기를 하다보면 해석 문제에 부딪힌다. 질문이 생기고 뜻을 이해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모든 성도는 성경을 읽고 무슨 뜻인지 질문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해석이 올바른 것은 아님을 기억하고 우리는 바른 해석을 해야 한다. 빌립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이사야53:7-8을 올바르게 해석한다. 그는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는데, 이 안에는 많은 내용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구약 성경과 예수님이 어떤 관계인지를 해석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임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다. 이런 바른 이해는 성경 읽기에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읽고 해석한 다음에 과연 이것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신앙 대화는 말씀을 수용하고 실천할 때 꽃을 피우게 된다. 교회 안에 순종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교회는 건강해질 뿐 아니라 영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다. 이처럼 교회 안에 신앙 대화가 풍성해지려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주일설교 08/16/2020 사도행전8:18-24,“옛 습관”

<오늘 설교 요약>제목:“옛 습관” (사도행전8:18-24)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습관을 어릴 때부터 고쳐야 함을 말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되살아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신앙 영역에도 옛 습관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오늘 본문에서 시몬이 옛 습관에 사로잡혀 큰 물의를 일으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와 안수로 성령받게 함을 보고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했다. 베드로는 엄한 질책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가르친다. 시몬은 옛 습관이 되살아나 신앙적으로 큰 잘못을 범한다. 이렇듯이 옛 습관은 신앙의 장애물로 신앙을 왜곡시키고, 영적 빈곤 상태에 빠지게 한다. 시몬은 사람의 능력으로 성령받게 했다고 오해했고, 돈으로 그 능력을 살려고 했다. 이것이 신앙 왜곡의 모습이다. 베드로는 ‘돈과 함께 망한다,’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와 ‘마음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시몬의 영적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몬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은 자로서 합당한 새로운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삐뚤어진 신앙관과 비참한 영적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영적 도약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한다. 시몬이 할 일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옛 습관을 빨리 끊어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다. 실제로 시몬은 회개한다. 베드로의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는 시몬처럼 옛 습관으로 돌아가 영적으로 피폐해질 수 있다. 그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곧바로 옛 습관을 끊어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이란 시간에 영적으로 새로워질 뿐 아니라 신앙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실제적인 방식이다. 

주일설교 08/09/2020 사도행전8:14-17, “영적 교류”

<오늘 설교 요약>제목:“영적 교류” (사도행전8:14-17)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도 다양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각 교회는 다양한 색채를 통해 독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를 연결해 주는 신앙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 교회가 영적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두 교회가 신앙 가치로 손을 잡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이야기를 뜻합니다. 이것을 듣고 받아들였기에 사마리아 교회에 두 사도를 보냈던 것입니다. 둘째, 세례입니다. 사마리아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2절은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는 필수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행해지는 세례는 그 가치를 추락시킬 뿐입니다. 셋째, 성령입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 교회에 와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성령을 받은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두 사도의 기도와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2:38-39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마리아 교회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다를 바가 없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엡2:18과 4:3은 성령의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신앙의 가치는 교회의 영적 교류를 가능케 합니다.  

8/02/2020 사도행전8:9-13, “복음의 승리”

<오늘 설교 요약>                   제목:“복음의 승리” (사도행전8:9-13)

복음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몬의 등장은 이것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시몬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사마리아 도시에서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곳에 빌립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영적 대결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예수님도 영적 대결을 펼치셨다. 바울도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을 했다. 복음 반대 세력에 대해 예수님은 마10:16에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고 하셨다. 이리 같은 세상이 복음을 반대할 것이다. 이 속에 빌립이 들어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 우리 사회는 다른 모습으로 복음을 반대하는 세력이 활동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인본주의, 쾌락주의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의 파워를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빌립의 전도를 받고 시몬의 지배하에 있던 사람들이 세례받았음을 강조한다. 복음의 승리는 시몬의 회심에서 절정에 이른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빌립을 따랐다. 우리는 복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사람들 속에 들어가 승리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1:9과 고린도전서1:23-24에서 복음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복음은 막강한 권세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 한다. 복음은 여전히 활동하며 죄인을 구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하고 복음을 자랑해야 한다.

07/26/2020 사도행전8:4-8, “예수님의 발자취”

<오늘 설교 요약> 제목:“예수님의 발자취” (사도행전8:4-8)

힘들고 지치면 주저앉고 싶어지듯이, 교회에 슬픔과 고통이 몰아치면 새로운 힘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힘을 내고 있다. 특히, 빌립의 사역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째, 인간적인 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유대인인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간 모습을 보자. 유대 사회에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다. 그 룰을 깨고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간 빌립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교회는 어느 곳에 세워지든 인간적인 장벽을 만나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허물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영적 열매가 맺힌다. 사마리아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성령이 역사하신 결정적인 증거이다. 빌립 사역으로 영적 열매가 풍성히 열리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체험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 시대일지라도 영적 열매는 열린다. 셋째, 살리는 사역이다. 귀신이 쫓겨나고 불치병이 치료되는 일은 살리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이렇듯이 생명을 살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성령은 이 일을 하는 교회 위에 역사하신다. 이렇듯이 교회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를 때, 영적 축복을 받는데, 그 결과로 영적 희열을 체험한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처럼 교회는 영적 희열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교회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성령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성령의 기쁨이 교회 안을 가득채울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다.

07/19/2020 사도행전8:1-4, “복음 열정”

<오늘 설교 요약>                 제목:“복음 열정” (사도행전8:1-4)

초대 교회는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커다란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총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소중한 일꾼을 잃고, 교회 전체가 흩어지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일 등이다. 이 아픔들은 교회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한꺼번에 이 모든 고통들이 몰려왔다. 과연 견딜 수가 있을까?

이 시대 교회는 어떠한가? 다른 종류이나 교회가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다양한 아픔을 겪고 있다. 이 속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초대 교회는 우리에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4절을 보면,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흩어진 이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로서, 오순절 성령 체험과 3천명의 회심자들, 가난한 이를 위해 재산을 내놓는 일 등을 목격하기도 하고 동참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교회가 고통 속에 있고, 개인별로 고난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든지 상실감에 시달릴 수가 있다. 상실감은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는 감정을 갖게 한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복음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매우 인상적이다. 복음 열정이 전혀 꺼지지 않았다. 여기에 저자의 목적이 있다. 교회가 고통을 겪을 수 있지만 복음 열정만큼은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에게 복음 열정은 꺼진 적이 없다. 사도행전28장을 보면, 로마에서 집에 구금당했을 때에도 그는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복음 열정이 있는가? 지금도 예수님 이야기에 열정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한 번 복음 열정이 타오를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07/12/2020 사도행전7:54-60, “죽음 앞에서”

<오늘 설교 요약>제목:“죽음 앞에서” (사도행전7:54-60)

오늘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신앙의 참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스데반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무엇이 죽음 앞에서 그를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는가? 세 개의 단어, ‘부활, 확신, 용서’를 기억하자.

첫째, 그의 부활신앙이다. 죽음 앞에서 그는 하늘의 광경을 목격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 이것이 그가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했던 힘의 원천이다. 그는 평소에도 부활의 예수님을 믿었고 사람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 부활의 예수님을 본 것은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그에게 주었다. 죽음이 부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한 순간이다. 부활은 모든 신앙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는 강력한 영적 힘이다.

둘째, 구원의 확신이다. 스데반은 59절에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 한다. 이것은 초조와 불안, 의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서 외친 것이다. 그는 죽음이 예수님의 사랑에서 그를 끊어낼 수 없음을 확신했다. 이처럼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 죽음 앞에서 돌아보게 된다. 죽음 앞에서 이것은 우리 영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신앙요소이다.

셋째, 용서이다.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 한다. 돌을 던진 이들을 향해 용서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스데반 자신을 위한 영적 치료이다. 세상의 모든 미련을 다 정리한 증거가 용서이다. 용서는 죽음 앞에서 마지막 찌꺼기를 다 제거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부활, 확신, 용서는 죽음 앞에서도 우리를 당당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