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19_2020 갈라디아서 5_16-17 “성령만이 답이십니다”

제목: 성령만이 답이십니다 (갈5:16-17)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루는 일은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오직 성령만이 이런 교회를 이루게 하신다. 이유는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으며, 교회는 성령의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일을 해내실 수가 있다. 성령은 개인에게 임하실 뿐 아니라 교회 전체를 거룩하게 이끄신다. 그래서 성령은 실제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신비이다. 예수님도 성령의 내주하심을 바람에 비유하시면서 그 신비로움을 말씀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지만 우리는 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경험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각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지만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하나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성령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따라야 한다.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실제적인 순종인데, 성령의 열매가 그 증거이다. 성령을 따른다면 그 열매로 확인이 된다. 상식적으로 열매로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듯이 성령의 열매도 성령을 따르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성령을 따르는 일은 구호에 불과하지 않다. 모호한 대상을 막연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가 분명하듯이 성령을 따르는 일은 분명하다. 이것이 교회로 거룩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로 거듭나게 한다.

01_12_2020 창세기 26_12-22 “활기가 넘치는 교회”

제목: 활기넘치는 교회 (창26:12-22)

교회 표어 중 두 번째인 ‘활기찬 교회’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가득한 교회를 이룰지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 이삭은 우물 파는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자꾸 다른 종족에게 강제로 빼앗기곤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얻게 된 이야기이다. 이것은 교회가 활기넘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더 활성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우물을 통해 더욱 극대화하려고 했듯이,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 말씀, 기도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더욱 얻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기심과 다툼이란 복병이 언제든지 침범할 수가 있다. 이삭도 이 두 가지로 고생했듯이 교회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기심은 뼈를 마르게 하며, 그것을 이길 자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다툼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독과 같다. 교회는 활기찬 모습을 이루고자 했을 때, 이 두 가지 장벽에 부딪친다. 과연 교회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것인가? 이삭은 우물을 빼앗겼을 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우물을 팠다. 이처럼 교회는 활기넘치는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영적 에너지를 얻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허락하신 영적 축복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01_05_2020 이사야 6_1-7 “거룩을 향한 열망”*

제목: 거룩을 향한 열망 (사6:1-7)

새해 첫 주일에 우리는 교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고민한다. 거룩한 성도, 활기찬 교회를 향해 온 교회가 마음을 모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거룩을 향한 열망이 타올라야 한다. 이사야 이야기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째,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사야는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목격했는데, ‘거룩하다’는 말을 세 번이 할 정도로 하나님의 거룩성이 부각되었다. 이사야가 체험한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함이었다. 거룩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둘째, 영적 절망을 체험하는 일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영적인 파산 상태를 체험한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 자신의 실체를 본 것이다. 이것은 입술만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가 부정하다는 뜻이다. 거룩한 하나님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은 이렇게 추하다. 이것이 우리로 거룩에 대한 열망을 품게 한다. 셋째, 용서의 행복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사야는 죄사함을 체험했다. 자신이 깨끗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영적 깨끗함은 거룩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한다. 깨끗함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이렇듯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 죄를 알게 되고 용서를 받음으로 더욱 더 거룩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된다.

12_29_2019 시편 17_7 “특별한 사랑”

제목: 특별한 사랑 (시17:7)

송년주일에 다윗이 했던 기도 제목 하나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한다. 지금 주께 피한 삶을 살고 있는가와 주의 사랑을 실제로 갈구하는가 이다. 주를 피난처로 삼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인데, 죄로 인해 우리 모든 인생은 주를 벗어나 있었다. 죄로부터 구원받고 우리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며 산다. 주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는 안전한 삶을 살아간다. 성경은 그러한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주께 피하는 방식에 대해 야고보는 기도할 것을 권면한다. 주께 피하는 자들이 맛보는 행복은 주의 보호와 안전이다. 히브리서는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권면한다. 두 번째로, 주의 사랑을 갈구하는지를 보자.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주의 기이한 사랑을 받는다. 주의 특별한 사랑은 믿는 이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고난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성경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사랑을 증명하신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특별하다. 우리가 삶에서 주의 특별한 사랑을 갈구한다면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12_22_2019 누가복음 1_30-33 “왕이신 예수”

제목: 욍이신 예수 (눅1:30-33)

성탄주일에 우리는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예수는 누구신지에 대한 성경의 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오늘 본문은 ‘왕이신 예수’를 선언하고 있다.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왕의 자격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왕의 자격이 있으신가? 본문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서 왕위를 수여받았음을 명시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왕으로서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의 왕의 자격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왕이심을 증명하셨느냐이다. 왕의 자격과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구별된다. 자격이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어떤 왕으로 오셨느냐에 의해 결정되는데, 죄와 사망을 이겨내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자. 그렇기에 고난과 죽음으로 죄와 사망을 정면돌파하셨고, 부활로 모든 승리를 선언하셨다. 왕이심을 완벽하게 증명하셨다. 마지막으로, 왕으로서 지금 다스리고 계시느냐이다. 본문은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 나라가 무궁하다고 선언한다. 교회가 그 증거이다. 교회는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다. 세상 속에 교회를 두신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의 다스리심이 얼마나 확실한지와 지금도 다스리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성탄 주일에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더 깊이 찬양하기 바란다.

12_15_2019 베드로전서 4_10-11 “봉사의 흔적”*

제목: 봉사의 흔적 (벧전4:10-11)

봉사의 흔적은 말씀과 기도의 흔적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이다. 섬김을 더욱 깊게 새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드로는 섬김의 실패에서 성공으로 이어진 삶을 살았다. 무엇이 봉사의 삶을 살게 했을까? 첫째, 은혜이다. 본문을 보면, ‘각각 은사’와 ‘여러 가지 은혜’를 받은 자로서 봉사하라 한다. 은혜를 받아야 봉사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섬겼던 많은 인물들이 성경에 잘 나온다. 둘째, 낮아짐이다. ‘선한 청지기’는 낮아짐을 전제한다. 낮아지지 않고서 청지기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은혜는 이렇듯이 낮아지게 한다. 은혜는 우리 죄를 깊이 자각하게 한다. 죄의 자각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를 취한다. 그 마음으로 남을 섬길 수 있다. 셋째, 능력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라 한다. 우리의 능력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섬길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경험한다. 봉사와 하나님의 능력은 분리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서로 봉사할 때 교회는 새로워진다. 자신의 힘으로 봉사하다가 시험에 드는 것을 방지하는 좋은 방법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봉사의 흔적은 우리 삶에 깊게 새겨져야 한다. 은혜의 충만과 낮아짐은 더욱 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인도함을 기억하자.

12_08_2019 다니엘 6_10 “기도의 흔적”

제목: 기도의 흔적 (단6:10)

지난 주 ‘말씀의 흔적’에 이어 오늘은 ‘기도의 흔적’을 전하고자 한다. 신앙을 갖게 되면 반드시 있어야 할 신앙의 흔적은 기도의 삶이다. 어떻게 하면 기도의 흔적을 더욱 깊이 새길 수가 있을까? 다니엘은 기도의 흔적이 매우 뚜렷이 새겨진 삶을 살았다. 그 비결은 ‘규칙적 기도 생활’이다. 본문은 그가 얼마나 규칙적으로 기도했는지를 전에 하던대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것으로 증명한다. 기도 시간의 양과 횟수에 대한 것이 아닌 규칙적인 기도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규칙적 기도를 방해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다니엘도 더 이상 규칙적 기도를 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났다. 이처럼 우리 기도를 방해하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 삶에 발생한다. 과연 그 속에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다니엘은 위기의 상황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것이 바로 규칙적 기도 생활의 동력이다. 감사의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다. 기도하면 사자의 밥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 다니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도로 인해 더 어려운 환경을 감사의 마음으로 극복하는 다니엘은 하나의 모델이 된다. 환경 때문에 기도를 중단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해야 한다. 감사의 마음은 규칙적 기도 생활의 동력임을 잊지 말자.

12_01_2019 창세기 21_1-4 “말씀의 흔적”*

제목: 말씀의 흔적 (창21:1-4)

올 마지막 달을 남겨두고 ‘신앙의 흔적’에 대해 세 번에 걸쳐 설교하려 한다. 오늘은 ‘말씀의 흔적’에 대한 설교이다. 사라의 인생에 남긴 말씀의 흔적이 무엇인지를 통해 우리 삶에 말씀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사라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란 약속이다. 이것은 사라가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직접 체험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신다. 이것은 말씀의 흔적의 필수 요소이다. 둘째, 하나님이 말씀대로 우리 삶에 일하실 때 말씀의 흔적은 더욱 뚜렷해진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라의 인생에 실제로 개입하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돌보시고 행하셨다’는 말씀에 주목하자.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것을 이루신다. 이 같은 체험은 말씀 흔적을 우리 안에 뚜렷이 남긴다. 셋째, 말씀을 신뢰하는 우리의 반응이다.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신뢰한다면 그 흔적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안에 각인된다. 이것을 방해하는 ‘의심, 이탈, 체념’ 은 매우 위험한 요소들이다. 이것들은 말씀 흔적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신뢰는 말씀 흔적의 필수 요소이다. 이렇듯이 우리는 말씀 흔적이 우리 안에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11_24_2019 창세기 3_53 “감사의 회복”*

제목: 감사의 회복 (창35:3)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천적인 불안/두려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야곱은 본문에서 매우 힘찬 목소리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초조함,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가던 도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외삼촌 집에서의 20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생고생이었다. 외삼촌이 열 번이나 말을 바꾸면서 고생을 더욱 심하게 했다.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오는 도중에 에서와의 관계 회복을 맛보면서 그는 너무 행복해 하면서 세겜 성읍 근처에서 정착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외동딸 디나가 성폭행 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그의 두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의 보복으로 더욱 큰 곤경에 처한 야곱이 오늘 본문의 말을 한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신앙적 결단이다. 첫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기억했다.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신 하나님’은 지금 그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둘째,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했다. 그가 가는 길에 항상 곁을 지키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그의 삶 모든 영역에서 그는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은 신앙적으로 무척 중요하다.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은 현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감사의 회복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회복에 달려 있다.

11_17_2019 사도행전 6_1-7 “교회의 진정한 실력”*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교회는 없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교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대 교회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영적 분위기가 최고 수준이고, 영적 성장이 괄목할 만하고, 경건 실천이 탁월하다. 그럼에도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다. 교회 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큰 사건을 만났다. 한 쪽 그룹이 원망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원망이 폭발해서 온 교회가 큰 시험에 빠졌다. 과연 사도들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무엇이 진정 문제인지를 놓고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았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사도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도와 말씀 사역임을 확인한 것이다. 말씀 사역에 소홀해지면 왜 문제가 되는가? 교회 전체가 말씀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이 말씀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사도들은 말씀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렇다면 구제 사역은 어떻게 되는가? 일곱 명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를 선출하도록 교회에 권한을 위임한다. 교회는 사도들의 제안을 기쁨으로 수용한다. 원망했던 그룹들도 사도들의 권위에 순종한다. 정해진 기준에 맞춰 일곱 명의 일꾼을 세운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고 있다. 말씀이 최우선임을 확실히 한 결과로 온 교회는 말씀이 왕성해진 것을 경험한다. 말씀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영성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