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11/13/2022 하나님의 사람(5) “인도와 보호” (창39:1-3)

오늘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요셉 이야기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주제입니다. 그의 삶을 연구하다보면 이 주제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인도와 보호는 쌍둥이와 같습니다.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요셉 이야기를 보면, 우리 생각과 너무 다른 인도와 보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첫째, 그분의 인도와 보호가 과연 완벽한가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완벽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선택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 입장에서는 인도와 보호가 때론 제대로 되지 않는 것같이 보입니다. 둘째,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멈추지 않습니다. 요셉이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우리 안전이 무너졌다해도 그분의 인도와 보호가 중단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인도와 보호의 목적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셋째, 인도와 보호를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안전이 위협받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철저히 그분의 인도와 보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면 신앙이 자랍니다. 인도와 보호를 받는 우리는 신뢰하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위기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믿고 따르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11/06/2022 하나님의 사람(4) “외로움” (시편105:17-19)

오늘은 외로움에 관한 설교를 하려 합니다. 요셉 이야기 중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주제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이란 무엇일까요? 혼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지만 부족한 이해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어떤 전문가는 외로움을 단절이라 말하는데, 매우 적절한 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단절감(disconnected)은 혼자 있든, 다른 이들과 있든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요셉은 단절된 상태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노예로 팔려갔고, 감옥에 갇혀 있는 시간동안 그는 극심한 외로움(단절감)을 느꼈습니다. 외로움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년층만 아니라 젊은층에서도 이런 외로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신앙인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우선, 외로움이 신앙의 한 단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과 외로움을 상극으로 보면 안됩니다. 신앙 생활 중에 언제든지 단절된 상태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외로움은 신앙 훈련, 특히 인내심을 키우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외로운 시간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요셉의 노예 생활, 감옥 생활은 외로움을 통해 그의 신앙 인내심을 키우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외로움을 통해 생깁니다. 이처럼 외로움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10/30/2022 하나님의 사람(3) “마음의 상처” (창세기45:4-5)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 인생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세 번째 주제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그는 형제들에 의해 버림받았습니다. 이는 마음의 상처를 가장 깊이 남기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다윗의 경우, 가장 아끼던 아들인 압살롬에 의해 배신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마음의 상처를 시로 남겼는데, 마음의 탄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에 지배당하지 않은 요셉의 모습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그 상처에 지배를 당하고 맙니다. 요셉도 그럴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심한 배려로 요셉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셨습니다. 보디발 가정에 노예가 되었을 때에 주인의 눈에 들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또한 형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요셉으로 듣게 하셨습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는 마음의 상처에 지배당하지 않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상처준 사람을 품었습니다. 이는 마음의 상처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보여준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진심으로 형들을 품는 요셉을 보여줍니다.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를 끝까지 품으셨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얼마든지 입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를 씻어낼 수 있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10/23/2022 하나님의 사람(2) “위기” (창세기37:18-20)

요셉 이야기 두번째 시간으로 ‘삶의 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 인생에 찾아온 두 가지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이 그것입니다. 삶의 위기 속에서 신앙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우선, 신앙인에게도 삶의 위기는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총 세 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 타인의 잘못, 자연 재해 및 불치병 등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나 죄로 인해 위기가 올 수가 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타인의 그릇된 행동으로 삶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인생 전체가 통째로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요셉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노예로 팔릴 때, 감옥에 억울하게 갇힐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미리 막을 수 있지 않냐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앙인에게는 신앙적인 고민이 생깁니다. 신앙 생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신앙은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신앙적 고민을 해결하는 좋은 접근입니다. 하나님 밖에 우리를 위해 줄 존재가 없음을 깊이 깨닫는 순간이 위기를 맞이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남의 위기를 더 깊이 이해하는 눈이 생기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삶의 위기는 신앙적 위기가 아니라 신앙적 도약의 기회임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주일설교 10/16/2022 하나님의 사람(1) “부르심” (창세기37:5-11)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잘 보여줍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요셉은 부르심을 받은 분명한 경험을 했습니다. 부르심의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사람과 상의하지 않는 점과 사람에게 기준(조건)이 없다는 점입니다. 요셉을 부르신 하나님은 이 두가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첫째 아들도 아니었고, 완벽한 성품을 가진 것도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사람과 상의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인간적인 조건 또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요? 요셉은 미숙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해 부족과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하나 더 추가해서, 이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르심은 파워가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부르심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우리와 상의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더 큰 축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가운데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09/25/2022 “은혜받은 자가 빠지는 함정” (마20:1-14)

오늘 본문은 천국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고용하는 모습을 비유로 해서 천국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전9시, 낮12시, 오후3시, 5시에 밖에 나가 일꾼을 고용하는 모습을 은혜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그들은 ‘놀고 있는 상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격 없는 이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시작한 이들이 나중에 가서는 큰 시험에 빠집니다. 주인을 원망하게 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잘못된 비교 의식입니다. 먼저 온 자들은 나중 온 자들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돈을 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주인과의 원래 약속은 생각하지 않고 나중 온 자들이 받은 액수를 생각하면서 자신들은 더 많이 받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긋나자 원망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비교 의식이 불러온 불행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공평입니다. 나중 온 일꾼들은 주인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습니다. 겨우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자 불공평하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한 시간과 더위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이처럼 은혜의 감격은 금방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이 자신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음을 강력하게 항변했듯이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이 나중 온 자들에게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자신의 뜻임을 강조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감격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설교 09/18/2022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히다” (행20:32)

오늘 본문을 보면,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힌 바울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은혜의 말씀의 위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말씀에 교회를 맡기고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이 교회 전체를 휘감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 은혜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말씀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은혜의 말씀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은혜와 신앙 성장은 필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는’ 은혜의 말씀을 말합니다. 은혜가 사람들을 세웁니다. 교회로 강하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성경은 은혜로 성장한 신앙인들을 수없이 보여줍니다. 이런 예들을 통해 우리는 신앙 성장에서 은혜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열매로는, 은혜의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은혜와 거룩함의 필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의 말씀으로 인해 교회가 거룩해진다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거룩이란 하나의 행동이나, 우리의 완벽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품입니다. 은혜의 체험은 우리로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은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를 체험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릴 것입니다. 

주일설교 09/11/2022 “은혜 안에 머물려면” (창3:1-3)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은혜’란 시각으로 보고자 합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충만한 곳입니다. 이 곳에서 산 아담과 하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서로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은혜로 가득했습니다.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느냐입니다. 이를 위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 사건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은혜를 어떻게 상실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뱀은 의심의 씨앗을 하와의 마음에 심어놓아 은혜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말을 해서 하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을 죽을까 한다는 말로 하와는 바꿨습니다. 의심의 씨앗이 자라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뱀은 거짓된 확신을 심어놓아 은혜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두 가지 거짓 확신을 심었습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거짓 확신과 하나님은 불공평하다는 거짓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을 거부하게 만들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에서 멀어지고, 떠나게 하는 거센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를 이겨내야만 합니다.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