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일 것입니다. 자신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할 때 성경에 대한 흥미가 급속히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적어도 2천년 전의 사람과 사건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불과 200년 전의 조선 시대를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옛날 일이라 생각이 드는데, 2천년이 훨씬 넘는 시대에 쓰여진 성경 이야기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것임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오래된 성경의 이야기를 최첨단을 걷고 있는 21세기에 왜 읽어야 하느냐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성경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읽고 또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그 때의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습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은 과거의 인물입니다. 그런 다윗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다윗의 개인적인 치적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보인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성막(궤)을 발견하기까지 안락함과 평안함을 거절한 다윗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그의 충성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충성심은 예배자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인데, 시인은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고 자신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이스라엘 전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함을 시인은 강조한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고 말하면서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셨던 약속을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로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란 약속과 연결시킵니다. 다윗을 넘어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이 약속은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는 일상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무병장수의 축복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 삶도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우리를 거처로 삼으시는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돌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성도로서 마음을 다해 즐거이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상황과 형편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붙들고 지금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성경을 통해 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