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시편146편 묵상) – 8/22/2020

한 평생 변함없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지 모릅니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없이 살았다는 말을 남기는 차원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았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대상을 위해 산 것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 차원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고 고백합니다. ‘생전’과 ‘평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이런 다짐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나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감정으로는 평생동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난제들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식어가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과거의 뜨거웠던 찬양이 얼음처럼 차가워져 입 밖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인이 말하는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신앙 고백은 멀리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굴곡 속에서 얼마든지 소망을 다른 곳에 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고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상처입은 우리의 감정은 다른 소망으로 가득채워질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시인은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하지만 권력과 물질을 쥐고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많은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경계하는 것일까요? ‘의지하다’는 말이 중요한데,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삶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삶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은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를 칭찬하는 시인의 말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강조하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얼마나 진실하신지를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라고 합니다. 우리의 헌신은 단순히 우리의 열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헌신의 대상인 하나님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분이신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함을 영원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헌신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시인은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고 말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불의와 불공평함으로 뒤틀린 사회 구조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주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헌신은 공허한 대상이 아닌 세상을 통치하시는 주님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영원하기에 우리의 헌신도 변함없이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