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전체를 흐르는 강력한 에너지는 ‘찬양’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찬양의 목소리는 자연과 인간 세계를 뒤흔들만큼 우렁찹니다. 시인은 과녁이 없이 허공에 화살을 쏘듯이 찬양하지 않습니다. 막연하고 불분명한 어조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감정으로 하나님을 높이지 않습니다. 찬양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풍성한 감성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고 말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음에도 없는 포장된 감성은 조금의 흔적도 없습니다. 찬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시인의 마음을 휘감고 있기에 그의 찬양의 폭은 넓고 풍성합니다. 특히 오늘의 시편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 세계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선명한 어조와 깊은 감성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자연 세계에 펼치신 하나님의 행적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와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입니다. 과학의 눈으로만 보면 시인의 감흥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구름의 생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시대에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인의 감성에 녹아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행동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시인의 영감어린 표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시인처럼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이 풍성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최첨단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연 세계와 하나님을 분리하려는 모든 시도에 우리는 강력히 저항해야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모든 것을 맡기고 손을 놓고 계신다고 함부로 단정지으면 안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자연 세계에 깊이 개입하실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람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행동하시는 하나님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을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고 합니다. 세상은 이 말에 콧웃음을 칠지 모르나 우리는 진심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란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삶에 실제로 개입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의 찬양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는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 주님은 우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할 때 평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굶주릴 때에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행동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활동 앞에서 우리는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