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를 강력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영역이 없습니다. 하지만 죄가 세상에 유입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집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상을 다스릴 인간이 죄의 노예로 전락한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바벨탑 사건이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탑을 쌓던 사람들은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4)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죄의 유입으로 하나님 나라가 사람의 나라로 뒤바뀐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으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들어오십니다. 죄를 거두어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그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물론 사람들의 나라는 이것을 계속해서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대치가 계속됩니다. 이런 구도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그의 백성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주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의 백성은 세상 나라 속에서 주의 위대하심을 높이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에 주의 통치를 알리는 올바른 방식입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고 할 뿐 아니라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면서 주의 통치가 어떻게 이 땅에 실현되는지를 균형있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세상 권력자들처럼 군림하지 않으시고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 인자하심으로 다가오심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면서 기도의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실 수 있음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계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높이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평범한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히 들어올 것입니다. 개인의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모아지면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것입니다. 이것이 확장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나라와 민족을 품을 것입니다. 교회를 통한 선교의 아름다운 확장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 때문입니다. 이 일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개인과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이어받은 도구로서 이 땅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부족함,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지금도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