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경연 대회는 때론 식상함을 주지만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것과 듣는 것 중에 무엇을 더 선호하냐에 대해 개인마다 차이가 나지만 노래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노래를 좋아할까에 대한 답도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감정과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사람들은 감성에 호소를 하거나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노래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도 부르는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찬양 자체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부르는 이의 감정이 찬양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시인이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자”고 하는데 그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이함에 놀란 마음을 찬송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이한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경이로운 역사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구원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다”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알 수 있도록 그의 구원을 나타내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세상이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대표적으로 애굽 탈출과 바벨론 포로 해방입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시인은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다”고 표현하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절대 잊혀질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시인은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하면서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했음을 강력히 외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작은 국가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퍼져나갈 것을 미리 알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은 온 세상이 맛볼 구원의 예고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라,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라는 경계선이 없어지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은 예고편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하자”는 말은 구원받은 이의 감정이 얼마나 감격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구원을 깨달은 사람은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에게 다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연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영적 감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고 우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찬양의 힘은 구원의 확신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가슴 깊이 새길 때 우리의 찬양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