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살면 세상이 원망스러워집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원망의 대상이 됩니다. 신앙인도 비슷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의 핍박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을 하면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물이 없고 음식이 부족해서 원망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모세가 지도자로서 애굽에서 주도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왔기에 그들은 광야의 모든 불편함과 고통을 모세에게 쏟아낸 것입니다. 애굽의 박해로부터 해방이 된 것만해도 감사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오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축복은 현재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란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금이 행복하고 안전하고 편안해야 불만과 원망이 사라집니다. 과거에 아무리 고생을 많이 했어도 오늘 만족스러우면 괜찮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이러한 우리의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얼마든지 찬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 속에 살고 있는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할 것”이라면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재앙 앞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찬바람이 휭휭 불고 있습니다. 양의 입장에서 사자들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등꼴이 오싹해집니다.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란 신앙을 갖고 있어도 흔들릴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은 열악합니다. 현실이 냉혹해지면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능력을 갖고 있으시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도움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에 마음이 상합니다. 하나님을 깎아내리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지만 높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적의 창과 화살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날카로운 칼이 우리를 찔러오는데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인의 다음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상 위에 높아지기를 원합니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창과 화살, 칼이 난무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이 확고부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면서 얼마나 확고부동한 마음 상태인지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