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 (시편144편 묵상) – 8/20/2020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를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 하나가 도시 전체를 폭력 사태로 몰아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진실이 무엇인지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미 태풍이 핥고 지나간 뒤입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과연 나를 위한 뉴스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찾고 있습니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지, 해를 끼치는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보다 효율성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시대이기에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유익을 우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각이 신앙에도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리보다는 유익으로 접근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진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얻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훨씬 더 호소력이 큽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도 그것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때 많은 사람에게 매력으로 다가갑니다.
오늘의 시편도 마치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듯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고 합니다. 어떤 복이냐에 대해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라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경제적인 번영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시인은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라 묘사하면서 모든 부모의 열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잘될 것이란 뉘앙스가 매우 강하게 풍깁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살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은 비슷합니다. 가정이 행복하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사회적으로 잘 풀리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을 보장해 주는 듯한 약속을 시인이 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이런 복을 누린다는 약속을 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일까요? 우리가 이 시편을 처음부터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으면서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전쟁 중입니다. 그는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안전, 풍요를 인생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보호를 입고 싶은 것입니다. 삶은 밝은 날과 흐린 날이 교차합니다. 그것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시인은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변하기 쉬운 물질과 세상 성공을 향하지 않고 반석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과의 친밀함을 더욱 강화시켜 삶의 굴곡 속에서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