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1년을 이어온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때 그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했던 적이 있어서 폐지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아직까지도 시청률이 어느 정도는 나온다고 하지만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사람을 웃기지 못한 결과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시대에 맞는 웃음 코드를 찾지 못했다는 뼈아픈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속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개그맨들의 끝없는 노력과 땀이 없어서가 아니라 웃음을 회복시키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요즘은 그냥 웃을 일이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도 사회의 일원이기에 이런 현상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읽은 103편은 찬양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내 속에 있는 것들’이란 표현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시인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찬양이 한 사람의 심연까지도 파고들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겉모습이 아니라 깊은 내면이 찬양으로 가득차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웃음이 시인의 마음에 가득함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시인의 마음에 찬양이 가득하도록 했을까요? 시인은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시인의 인생 깊숙히 파고드신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시인의 소원 성취를 이루신 하나님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라고 고백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그릇된 길을 걷는 인생 속으로 들어오셔서 은혜와 사랑으로 채우시고 기회를 다시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탄복하는 시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답안지를 달달 외워서 고백한 것이 아닌 삶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임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계심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긍휼의 체험에는 시인의 말처럼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에 불과한 우리 인생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수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 우리의 마음은 찬양으로 가득채워질 것입니다. 웃을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