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열정을 쏟다가 한순간 마음이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일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은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 생활에서 흥미를 잃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취미가 바뀐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면 부모의 근심이 됩니다. 개인을 넘어 집안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공부 열정을 되살리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를 설득해서 다시 공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부모는 최선을 다합니다.
신앙의 열정이 생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신앙 열정이 타오르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신앙 생활을 합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신앙 생활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삶의 의욕이 차고 넘칠 뿐 아니라 모든 일이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신앙 열정이 생기면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안에 신앙의 열정이 타오르면 바울이 말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됩니다. 시인이 말하듯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신앙의 열정이 어느 순간 식어버립니다. 신앙 생활이 낯설게 느껴질 뿐 아니라 불편해집니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고 불편한 장소에 있는 것처럼 신앙 생활에 거부반응이 생깁니다.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입니다. 시인이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친다”고 말한 것처럼 삶에 큰 고통이 찾아올 때 신앙이 식을 수가 있습니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삶이 왜 이리 고달프냐는 탄식이 신앙의 열정을 삼켜버립니다. 시인이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다”고 하듯이 하나님께 기도했음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신앙이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지만 전혀 기도 응답이 없는 삶이 이어지면서 신앙 생활이 불편해집니다.
시인은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다”고 말합니다. 삶의 어려움과 기도 무응답 수준을 넘어 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데도 오히려 비방과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수치가 얼굴을 덮었다’는 것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굴욕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힙니다. 이런 수치와 모욕을 겪으면서도 신앙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 무엇도 주를 향한 우리의 열심을 꺾을 수 없도록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신앙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