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주는 기쁨도 있고 받는 행복도 있습니다.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서로의 소중함을 우리는 느낍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 도움을 주고 받을 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위치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려워서 도움을 받지만 다른 방식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애를 입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평생에 걸쳐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그 옆을 떠나지 않고 평생 돌봐준다면 엄청난 축복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무능입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의 처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품으시고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돌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입니다. 시인은 구원을 받은 이에 대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전능자의 그늘’이란 곧 “피난처요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의 보호를 뜻합니다. 시인이 부러워하는 것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놓인 인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 사는 것을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으로 구체화시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서 피하리로다”고 묘사합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인생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이로 하여금 전능자의 그늘을 부러워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인생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사모하고 그것을 체험하고픈 마음을 먹게 합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 얼마나 담대해지는지를 우리는 시인의 말을 통해 체감할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고 신앙인의 담대함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공포, 전염병, 재앙’ 등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삶의 어두운 면들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가족, 사회, 국가에 전염병이 돌 때 얼마나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는지를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담대함을 표출합니다. 이것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신앙인이 세상에 나타내야 할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전능자의 보호를 받는 우리는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시인은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할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세상을 덮을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축복입니다. 우리 주님의 그늘은 평생을 넘어 영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