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긴 격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극한의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란 생각에 사로잡힐 정도로 절망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마음에 마음과 영혼까지 질식될 것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릅니다. 오늘의 시편은 이러한 환경에서 쓰여진 시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고 합니다.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서러움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하지만 시인은 ‘시온’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조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시온이기에 이것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모습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을 가장 선명하게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의 예언서를 읽으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그들의 죄악에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포로가 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과거의 삶을 통곡하고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온을 기억하며’는 이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여전히 시온을 기억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은 포로 생활이기에 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면서 현실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어찌보면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아픔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의 영혼까지 파고들 수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고 함이로다”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수치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로가 된 처지에서 원수같은 바벨론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야 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시온의 노래’인 하나님을 찬양할 때 부르던 것을 그들을 위해 해야 하다니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모욕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의 일을 시킨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라면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바벨론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강인한 의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굴욕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시인은 절망적인 말을 하고자 할 때에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어다”고 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작은 희망도 없는 환경에서 불평과 원망, 탄식과 분노에 사로잡히려 할 때마다 혀가 천장에 붙어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소멸되지 않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소망이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꺼지지 않는 소망을 더욱 강력하게 불어넣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