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감옥을 만들어 그 곳에 자신을 가두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짓눌린 생활이 길어지면서 마음의 감옥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오늘의 시편에서 저자는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라고 말합니다. ‘감옥’이란 문자적 의미보다 은유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 내면에 형성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루 빨리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기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감옥에서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인처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가장 실제적인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감옥에 갇힌 자신을 직시하고 그것을 밖으로 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인은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라고 개인의 삶에 닥친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원통함’과 ‘내 우환’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이 시편의 제목으로 붙여진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기도”에서 어느 정도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사무엘상22:1과 24:3에 나오는 장면인데,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동굴에 숨은 이야기입니다. 매우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는 다윗이 이 시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의 원통함과 우환은 절대 권력자인 사울왕의 핍박에서 비롯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겪은 우울한 감정은 매우 실제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드러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신앙적인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의 앞에 토로하며 그의 앞에 진술하는’ 태도는 기도가 얼마나 진심을 담아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인은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당한 원통함과 우환으로 내면 깊이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주께서 아신다’는 고백은 아무리 마음의 상처가 크고 깊어도 그것을 주님 앞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현실은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처럼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주님이 아신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신앙은 온실 속의 화초같은 인생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이 광야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도 주님 향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시인처럼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는 상황에서도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감옥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입니다. 비참한 현실, 막강한 상대 앞에서 기가 죽을 수 있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한 자유 열망은 우리 영혼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