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절제” (시편39편 묵상) – 4/24/2020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항생제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완벽한 치료제가 아니기에 효과가 없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어떤 환자에게는 그 약이 잘 맞아서 효과를 본다면 그 사람에게는 행운이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환자들도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른 예로 항암 치료제는 오랜 연구의 결과로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환자에 따라 부작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좋은 약일지라도 얼마든지 부작용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반응일까요?

시인은 개인적으로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겠다”는 신앙 결단을 내립니다. 이것은 신앙인이라면 항상 명심해야 할 경건의 모습입니다. 말과 행동 조심은 개인 경건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매일 실천해야 하는 생활 수칙입니다. 말 실수를 통해서 상처를 주고 받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릇된 행동, 부적절한 행위, 과격한 행동, 파괴적인 행위 등으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듣습니다. 말과 행동을 절제하는 경건의 모습은 신앙인으로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대한 삶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때론 절제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절제력이 느슨해지면 방종으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군인들의 탈선이 가끔씩 뉴스에 나옵니다. 휴가를 나와서 절제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입니다. 사람은 장소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절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자유로운 환경이 되자 절제력을 잃고 그릇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절제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고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야 하기에 자신과 치열하게 싸웁니다. 시인은 혀로 범죄하지 않겠다는 각오대로 자기 절제에 성공했습니다. 참으로 멋진 신앙의 모습인데, 그는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다”고 고백합니다. 절제된 언어 생활이 선한 말까지도 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물론 심할 정도의 자기 절제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기 절제는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자기 만족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자기 절제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절제가 균형있게 나타나려면 하나님을 위한 절제여야 합니다. 자기 절제의 성공은 하나님을 위한 것일 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