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곳이 없을 때” (시편55편 묵상) – 5/8/2020

시간적 여유와 풍요로움은 누구나 원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삶에서 근심을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마음의 근심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삶이 풍족해도 마음의 근심을 없앨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남모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하루 종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가 신앙이 없어서 마음의 근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세상 걱정을 끌어안고 걱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에는 눈에 띄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신앙 생활해서 마음의 고통이 심한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다”고 할 정도로 교회 생활이 모범적입니다.

그의 고통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강자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당하는 약자의 모습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그는 의지할 곳을 찾았지만 아무도 주변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고” 싶다고 말할까요?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합니다. 그의 신앙과 동료 신앙인들이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입니다.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신앙이 크게 흔들립니다. 신앙 무력증과 교회 무용론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합니다. 하나님을 믿은들 무슨 소용인가란 생각과 교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감정적인 상처를 이겨내고 우리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마음 속에 주입시켜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전능하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해줄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정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