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은 경험” (시편116편 묵상) – 7/18/2020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노래를 하는 프로그램은 선입견 없이 노래로만 실력을 판단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선입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 이유가 다양한데,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특정한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것만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나친 논리적인 이해는 신앙 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적인 유희를 즐기듯이 하나님을 분석하고 논리 속에 가두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이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지적인 노력만을 추구할 때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고 찬양합니다. 은혜와 정의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속성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죄를 용서하는 측면이고, 정의는 죄를 벌하는 측면인데, 우리 생각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들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은혜와 정의를 동시에 갖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적인 논리로 분석하는 대신에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고 합니다. 어려움에 대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를 시인은 언급합니다. 구원에 대해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고 묘사합니다. 시인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은혜와 정의의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그는 체험적으로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면 우리는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비록 완벽하게 살지는 못해도 매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우리는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고 자신있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이 때부터 우리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란 거룩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증거로서 이러한 거룩한 고민은 우리로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는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란 소명 의식으로 살게 됩니다. 은혜와 정의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기적이 우리 인생에 펼쳐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고민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와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는 거룩한 열정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실제로 지금처럼 어려울 때 우리는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란 마음으로 은혜의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지금도 우리 삶에 강력히 역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