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사람들은 감탄을 쏟아냅니다. 파란 하늘 위에 흰 구름들이 멋지게 펼쳐진 모습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석양에 비친 하늘의 오묘한 색채에 눈을 뗄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인류는 누리고 있습니다. 인류의 개발로 인해 자연이 손상을 입어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말처럼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내라”는 말은 매우 옳은 표현입니다.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장면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들이 “걸어서 강을 건넌”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시인은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요? 시인은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조롱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신화나 미신으로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계신가요?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모욕감과 수치심에 우리를 포기하신 것일까요?
시인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신다”고 밝힙니다. 단련하시는 방식에 대해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시인은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해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시인은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이 실제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증언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를 조롱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시인처럼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사람들의 반역에도 긍휼을 거두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그분의 은혜를 “와서 보라”고 초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을 알리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세상에 알리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한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업적과 공헌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배와 전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이것을 드러내고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자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