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향하신” (시편117편 묵상) – 7/20/2020

시대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의 채찍이란 말이 통할 때에는 학교에서의 체벌이 용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체벌이 인격과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금지되고 있습니다. 꾸지람은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임에도 현 시대에는 아이들의 기를 죽인다는 이유로 그릇된 교육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칭찬은 아이들의 인지 발달에 도움을 주기에 많이 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가급적 칭찬만 듣고 자란다면 아이들의 정서가 건강해질 것이란 주장이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찾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올바른 인성을 지닌 사회인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육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신화를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성이 다듬어지는 일에는 교육 외에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격이 자라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신앙 교육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교회 교육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 인격이 교육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커지면서 이론적 신앙이 높아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실천적 신앙은 단순히 지식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삶을 사는 일은 지적인 능력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격이 수반되지 않은채 입술로만 고백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자신의 경험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향하신’이란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표현을 가벼이 여기면 안됩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시기에 그분을 최고로 높이는 열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시인의 인격을 사랑으로 녹이신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사랑의 위대함과 더불어 그 사랑의 진실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일시적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지속적인 사랑은 빛이 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진실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체험했기에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자신있게 외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진실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찬양이 인격에서 나오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을 담아 찬양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때입니다.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온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 얼마나 깊이 감동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멈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