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회복된 후 인터뷰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회복된 것에 감사하면서도 가장 괴로운 것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입니다. 바이러스 환자를 죄인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두려웠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음에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뿐 아니라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이러스 감염자들도 희생자들인데,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감염된 환자로서 약자임에도 전염성 때문에 격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조치이지만 차갑고 매정한 눈으로 보는 것은 2차 피해를 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자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5절에서,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으심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직접 일어나 그들을 도우실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희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주어져 그렇게 선포한 것입니다. 당시 사회가 가련한 자들, 궁핍한 자들을 더 누르고 더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감염환자들을 죄인 취급함으로 마음의 상처를 깊게 내는 지금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시편 저자가 살던 당시 사회에 과연 이웃을 품을 수 있는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요? 저자는 1절에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진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사회에 가짜 뉴스가 난무하면 사회적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비열해집니다. 저자는 8절에서,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을 때”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 일들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지 않고 괴소문에 마음이 사로잡혀 약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과연 지금의 사회는 어떠한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려운 일은 감염자들이 죄인취급당하는 것입니다. 전염성 때문에 격리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분노와 화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은 4절처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겠느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약자들을 짓누르고 없는 자들을 탄식케 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과연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까요? 약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 약자들을 안전한 지대에 두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7절,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감염자들도 희생자이며, 따뜻한 위로가 필요함을 우리는 알지만 용기가 없어 표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감염에서 회복되었음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의 아픔을 알지만 용기가 없어 품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움츠러들기보다 어깨를 펴고 용기를 갖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