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8절-12절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2021년 3월 8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맹인이었던 사람이 어느날 눈을 뜨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과 친척, 친구와 지인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할 것입니다. 맹인으로 살았던 지난 날이 어떠했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에 축하와 응원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맹인으로 구걸하던 사람이 눈을 뜨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를 알던 사람들은 좀 색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란 말은 축하와 응원의 말이 아닙니다. ‘걸인’인 점과 ‘구걸하던 자’란 말은 사람들이 지금 눈을 뜬 맹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눈을 뜬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과거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정상인이 된 것을 환영하기 보다 과거에 맹인으로 구절하던 그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그 결과로 그들 사이에 이런 논쟁이 벌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눈을 뜬 맹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일어난 일 자체를 인정하기 보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꽤 컸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너무도 엄청난 일이 맹인에게 일어났기에 사람들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 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반응은 맹인에게 일어난 엄청난 행운을 그리 달갑지 않게 보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자신 때문에 논란이 커지자 “내가 그라”면서 상황을 정리합니다. 과연 사람들은 수긍하고 축하해 주었을까요? 사람들은 그에게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고 묻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렇게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지 못하는 심정으로 따지듯이 물어본 것입니다. 그에게 납득할만한 답을 내놓으라는 강압적인 태도입니다. 어찌 보면 축하하고 환영하고 기뻐하면 그만일 사안인데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눈이 떠졌느냐란 그들의 질문에는 맹인이었던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눈이 떠졌는지를 있는 그대로 말해줍니다. 조금도 과장하거나 축소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망도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눈을 뜨게 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예수란 이름을 거론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계산을 하지 않고 예수란 사람이 자신의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예수란 사람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이 예수란 사람에 의해 일어난 것만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란 사람이 없다면 눈 뜨는 일은 절대 불가능했음을 그 사람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냐에 우리가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이냐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죄를 씻으신 예수님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무엇이든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일을 해내셨음을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이 해내실 수 있는 일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가장 중심 자리를 언제나 예수님이 차지해야 합니다.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 앞에서든지 자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