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맹인으로 산다는 것은 빛이 없는 채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불행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온 세상이 빛을 잃은채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 전체가 불행을 겪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는 기쁜 소식을 요한복음서는 전합니다. 그 빛이 누구냐에 대해 복음서는 주저함 없이 나사렛 예수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예수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오셨고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도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빛이심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어둠을 없애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일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하셨는데, 사역하는 동안에는 여러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통해 어둠을 없애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둠을 없애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무엇이냐면 맹인이 눈을 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맹인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냥 말 한마디로 눈을 뜨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동작들을 통해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긴 다음에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릅니다. 왜 이렇게 하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로암 못에 가서 눈에 묻은 진흙을 씻으라 합니다. 맹인은 지시한대로 행동에 옮깁니다. “이에 가서 씻고”란 묘사는 매우 간단하지만 우리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과연 우리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란 상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맹인은 지시대로 따랐고 그 결과는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밝은 눈으로 왔더라”는 표현은 맹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단백하게 묘사하지만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어떻게 선천적 맹인이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은 하나의 치료 과정일까요? 이렇게만 하면 누구든지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치료법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하셨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는 말을 하신 예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하여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듯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예수님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낸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 때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을 우리가 수행할 수 있도록 특별한 능력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어둠과 싸울 때에 교회가 체험하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 자체에서 나오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도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세상의 어둠과 싸워 그것을 없애는 일을 해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이 일을 하라고 세상에 우리를 남겨놓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