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39절-41절 “설마 나에게 해당될 줄이야” 2021년 3월 23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아예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마음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상하게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것도 듣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비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판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논쟁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심각한 심판 이야기를 하신 것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단순히 기적을 체험한 사람의 행운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직면한 심각한 영적 비참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을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영적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한다’는 것은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한다’는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힌트로 예수님과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을 예수님에게 한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단지 서로에게 확인하듯이 물어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한다’는 것이 자신들을 향해 한 이야기라고 그들이 느꼈다는 점입니다.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한다’는 말에 ‘우리가 맹인인가’라고 반문한 것을 볼 때에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못알아들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맹인’이 갖는 이중적인 의미를 그들도 눈치챘던 것입니다. 물리적인 ‘맹인’과 영적인 ‘맹인’을 구분했던 것입니다. ‘보는 자들이 맹인이 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맹인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인 맹인을 지적한 것임을 그들도 이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맹인인가’란 말을 서로에게 하는 것을 볼 때에 자신들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경고를 알아들었지만 그것을 자신들에게 적용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날카로웠기 때문입니다. 아픈 부분을 찌르면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 경고의 메시지를 피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맹인인가’란 말에는 ‘설마 우리 들으라고 한 말이겠어’란 속마음이 묻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맹인이었습니다. 눈 앞에 있는 분이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는 말씀은 매우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죄가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죄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맹인으로 그저 예수님만 열심히 따라다닌 결과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가 맹인인가’란 어설픈 질문 보다는 ‘정말 우리가 맹인이구나.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란 위기 의식을 느꼈어야 합니다. ‘설마 우리에게 해당될 줄이야’란 놀라움을 나타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맹인인가’란 회피성 말보다 ‘진짜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구나’란 수용적인 태도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필요한 자세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하신 말씀이구나’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축복받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선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맹인인가’란 의심보다는 ‘그래 우리가 진짜 맹인이구나’란 고백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더욱 더 의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때에 개인과 교회는 영적인 부흥을 체험할 것입니다. 회개와 겸손의 영적 물결이 교회를 뒤덮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을 품고서 오늘도 주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