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36절-38절 “행복한 예배자” 2021년 3월22일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한 시간이 마치 십 분처럼 느껴집니다. 반면에 싫은 일을 하면 시간이 너무도 느리게 가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과 있으면 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을 다시 만난 그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게 해 준 예수님을 잠깐 본 이후 한참 동안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즐거웠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십니다. 단순한 정보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35절,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했을 때, ‘인자’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란 뜻으로 해석되는데,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맹인이었던 사람은 주저함 없이 ‘내가 믿고자 합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실체를 확실히 보여주십니다. 이 말을 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그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예배자로서의 태도를 취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배 대상자는 오직 한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예배하고 있습니다. 주변 유대인들이 어떻게 여길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행위로 인해 얼마나 공격을 받을지 예상이 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직 예수님만이 보일 뿐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었기에 그를 예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한다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절대적인 신뢰를 하기에 충분한 분이셨습니다. 이 정도의 확신이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예배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가장 행복한 예배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예배하는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예배하는 그의 마음을 막으려는 어떤 세력도 지금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예배자로서 오로지 예수님만을 경배하며 섬기는 그의 마음을 과연 어느 누가 빼앗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문제될 것이 없음을 그는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있나요? 과연 우리는 행복한 예배자인가요? 예수님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예배드리고 있나요? 아니면 다른 욕망들로 인해 겉치레에 불과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행복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지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으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예배자로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매순간 잊지 않는다면 오늘도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