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35절 “신앙의 신비한 매력” 2021년 3월19일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시대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든지 다른 대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재 국가는 기독교 신앙을 용납하지 않기에 그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거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퇴출될 정도로 예수를 따르는 일은 위험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 편에 서서 유대 권력자들과 맞섰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인으로 낙인찍힌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눈을 떴고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개인 신상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신앙은 지켰으나 혼자 광야에 남겨진 것처럼 외로움과 싸워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외로움이 엄습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격하여 그를 적극적으로 변호했지만 사람들에 의해 그 사회에서 퇴출되는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아무도 맹인이었던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상황에서 놀랍게도 한 분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란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 사람을 예수님이 만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배척당했다는 말을 들은 후에 예수님이 그를 만나셨습니다. 이 대목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 편에 서서 외롭게 싸웠고 그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된 사람을 직접 만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이 만나러 오셨다니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람들과는 멀어졌지만 예수님과는 가까워진 모습에 감격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과 가까워지면 예수님과 멀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과 가까워지면 사람과 멀어지는 고통이 뒤따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서 고민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정해야 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마치 겨울에 따뜻한 집에서 쫓겨나 눈보라를 혼자 맞으며 추위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 왔지만 예수님이 그를 더 가깝게 끌어당기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 갖는 신비한 매력입니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져 춥고 외롭지만 예수님이 채워주시는 경험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주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으로서 모든 신자들이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 체험이 쌓일수록 인간적인 고통과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님 편에 서는 신앙 생활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외롭게 신앙 생활을 하자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져야 예수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할 때에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예수님은 더욱 더 가까이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통을 극복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예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로 인해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어떤 아픔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 편에 서는 신앙적 결단을 내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체험하는 예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