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30절-34절 “마음을 울리는 고백” 2021년 3월18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맹인으로 태어나 거리에서 구걸을 하면서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의 운명이 예수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시선에 맞서 예수란 사람의 위대함을 알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일을 오늘 본문에서 맹인이었던 사람이 해내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정죄 의식에 사로잡혀 예수와 맹인이었던 사람 모두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비난만 쏟아내는 유대인들 앞에서 치유받은 그 사람은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차고 넘쳐도 그 속에서 담백하게 마음을 울리는 고백을 내뱉는 모습은 너무도 인상적일 뿐 아니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신앙 고백이 이렇게도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것은 진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수의 힘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유대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다’고 말하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 강력한 울림을 줍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예수란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면 어떤 답도 있을 수 없음을 그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예수란 사람이 경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이 그의 말을 들으셔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특별한 관계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라면서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없음을 명확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위치에서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신앙 고백입니까? 주변의 모든 유대인들이 강압적으로 예수를 미친 자로 치부하는 현실 앞에서 그는 당당히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으로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는 이미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진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그의 신앙 고백은 마음을 울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왔지만 주변의 유대인들은 그를 ‘온전히 죄 가운데 난’ 자로 정죄하면서 쫓아내버립니다. 어찌보면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울리는 신앙 고백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아도 진심어린 신앙 고백은 그 자체로 귀하고 소중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예수님께 다 드렸기에 어디서든 예수님의 제자로서 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울리는 신앙 고백은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당장은 열매가 없지만 하나님이 계속해서 그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마음을 울리는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내적 변화가 예수님에 의해 일어났음을 누구 앞에서든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작으나마 주님의 도구로 쓰이는 영광을 맛볼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한 개인일지라도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