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장3절 “이것이 끝이 아님을” 2021년 3월 4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길가에서 구걸하는 모습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시각이 그리 곱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치 천벌을 받아서 맹인으로 태어난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누구의 죄로 인해 이렇게 맹인으로 태어났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서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그것을 천벌로 여겨 죄인 취급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맹인으로 태어났다고 여겨졌기에 가혹하다는 생각 자체를 사람들이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누구의 죄로 인해 이렇게 맹인이 된 것이냐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호기심만이 분출될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들에게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단호하게 두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는 죄로 인해 이렇게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무언가 하실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죄로 인해 맹인이 된 것이 아니란 점과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을 하실 것이란 점은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자들이 갖도록 하셨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대하는 사회적인 시각을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을 갖도록 이끌고 계셨던 것입니다. 선천적 맹인에 대한 차가운 시각과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냉혹한 태도를 바꿔놓으시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상적인 것을 넘어 세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시는 놀라운 행위입니다. 맹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느냐란 시각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하나님은 그런 맹인을 통해 무언가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주류를 형성했던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능력과 실력,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사람의 능력에 의지해서 무언가를 하시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이런 시각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 함몰된채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그릇된 시각을 교정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려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 구성원들을 관찰한 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이것은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려는 예수님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렇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을 볼 수 있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만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시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맹인으로 태어났기에 어떤 희망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세상의 시각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해져도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교회는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시각을 교회가 회복한다면 어느 누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도 순수한 마음으로 환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기대감을 갖고 응원해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에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든지 훈련시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영적인 능력이며 교회만이 누리는 영적인 축복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