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념하는 일에 문제 제기를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특정한 날짜를 정해서 공휴일로 삼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부모를 비난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오신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시각은 너무도 냉담할 뿐 아니라 비열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의 비열함이 어느 정도인지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천적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쓰는 유대인들의 행위는 참으로 사악할 뿐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이제는 그의 부모를 소환해서 추궁합니다. ‘너희 아들이 맞느냐’와 ‘어떻게 눈을 떴다고 생각하느냐’란 추궁에 그의 부모는 궁색한 답을 내놓습니다. 아들인 것은 맞지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누가 그 눈을 뜨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아들이니 그에게 물어보라는 답은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충분히 느끼게 해줍니다. 유대 권력자들이 얼마나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지 그 부모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22절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출교’란 단순히 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유대 사회에서 추방된다는 뜻입니다. 삶의 터전 자체를 없애는 극단적인 처방이 ‘출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어떻게 나았는지를 알았어도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맹인으로 태어나 구걸하면서 살던 아들이 어느날 눈을 뜨고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면 어느 부모가 기뻐하지 않을까요? 만약 어떤 의사가 그 일을 해냈다면 부모로서 의사를 찾아가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를 만나든 그 의사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사기꾼이고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소문이 들리고 그런 의사 편에 서는 사람도 같은 부류로 취급당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의사에 대한 모든 소문들이 거짓일지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매도하고 그런 의사를 따르는 이들은 사회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한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맹인의 부모가 아들이 낫게 된 과정에 대해 침묵했던 것입니다. 예수란 사람이 아들을 낫게 했다고 말하고 싶어도 유대 사회에서 추방될 수 있기에 아무런 말도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아들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추방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의 정체를 말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될 수 있을텐데 그 뒤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여전히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는 일은 사회에서 추방될 정도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반기독교적이지 않기에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지 않아도 되지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이유로 여러 가지 손해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왜 손해를 봐야 하느냐란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아직까지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리고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회 또는 개인에 의해 고통을 당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실제적인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