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통해 죄에 대해, 그에 대한 처벌에 대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의 전성기는 그 이후 국가의 분열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 분열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는데, 그 원인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라는 죄입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는데, 그것도 모두 다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는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픈 역사인데, 그 원인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은 예수님 당시에도 이어졌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냈지만 로마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 것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재앙 뿐만 아니라 개인의 불행도 유대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의 결과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욥 이야기를 들 수 있는데, 욥이 겪은 엄청난 개인적인 불행을 그의 세 친구들은 욥의 숨겨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런 시각이 유대 사회에서 하나의 관습처럼 흘러왔습니다. 개인의 불행은 죄의 결과라는 시각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던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이것은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을 그들이 이번에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유대 사회가 갖고 있던 풀기 어려운 신앙 이슈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모든 인류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일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어떤 불행을 겪게 되면 죄를 지어서 이렇게 벌 받는 것이 아니냐란 생각을 사람들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죄 때문이냐란 질문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음주 운전 사고로 죄 없는 사람이 죽음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음주 운전자의 죄로 인해 발생한 불행입니다. 그렇다면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일까요? 제자들은 ‘누구의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부모의 죄인지, 당사자의 죄인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은 누군가의 죄로 인해 맹인으로 태어났다고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불행을 죄의 결과로 보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정말 죄 때문에 불행이 생기는가란 좀 더 근본적인 질문 자체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불행이 찾아오는 경우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이 정말 죄 때문에 일어나느냐에 대해 애매한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불행이 죄로 인한 것인가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본문의 경우에도 누구의 죄 때문인가란 질문 보다는 정말 이 불행이 죄로 인한 것인가란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물론 죄와 불행을 전혀 연결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둘을 인과관계로 연결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사회 생활에 큰 장애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죄와 불행의 관계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죄 때문에 불행하다고 단정짓기 보다 이미 겪고 있는 불행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행을 죄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불행의 원인을 죄에서 찾는다해도 불행 자체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불행의 원인이 무엇이냐보다 이미 일어난 불행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에 우리 신앙의 모든 화력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더욱 건강한 신앙인으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불행을 이기는 신앙을 갖고 있어야 그것을 체험하는 이들을 우리는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