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정글의 법칙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약한 자는 숨어야 되고 침묵해야 하며 억울해도 참아야 합니다. 반면 강한 자는 세상을 지배하며 법 위에 서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행동합니다. 법이 완벽하지 않기에 법 위에 서는 행위 또한 가능한 세상입니다. 힘의 대결이 펼쳐지는 곳에는 긍휼과 용서의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상대를 제압하고 제거하는 일만이 펼쳐질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자들은 이런 일을 서슴치 않고 행했습니다.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예수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를 고소할 방법을 찾다가 기회를 잡자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간음한 여자를 모세 율법대로 돌로 칠 것인지 말 것인지란 시험지를 예수 앞에 내놓고 계속 압박을 가한 것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는 것은 곤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냈다는 뜻입니다. 대답이 늦어지자 그들은 예수가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다고 판단한 그들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곤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침착하게 행동했습니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자를 쓰는 행위를 두 번이나 한 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평온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위기에 처할수록 침착하라는 말이 있듯이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질 때에 차분한 마음을 먹는 일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감정이 격화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난감함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도 충분히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몸을 굽혀 땅에 글씨를 쓰는 행동으로 대처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놀라운 답을 내놓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입니다. 이 답은 간음한 여자가 돌에 맞을 정도로 죄를 지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것은 죄를 지은 여인에게 긍휼을 베풀 여지를 열어둔 것입니다. 돌로 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제 비난하는 이들의 몫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들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습니다. 돌로 치자니 자신들은 죄 없는 자란 오만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돌로 치지 않자니 모세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는 애매한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말이 없이 그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임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하신 예수님에 비해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온갖 비난을 들을 때에 어떻게 대응할 지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말할 지를 알려주실 것이란 약속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앙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하게 도와주시는지를 보여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공격에 맞서 대응할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신앙을 지키려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온갖 유혹과 함정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한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완벽한 답을 하지 못하겠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 삶에 명백히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크고 작은 삶의 위기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로 우리는 삶의 위기를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