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누군가가 오백 년 전의 사람이 지금의 자신을 미리 알아보았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아브라함은 무려 4500년 전에 살았던 과거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지금의 예수님을 미리 보았다고 하니 과연 유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공상 과학 시대를 사는 우리는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접하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의 세계로 미리 가보는 경험을 가상적으로 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상상일 뿐 현실은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란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 자체가 없던 시절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에 기겁을 했습니다. 전에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던 그들이 이제는 확신을 갖고 그를 완전히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치부해버립니다. 그것을 ‘네가 오십 세도 안되었는데’란 말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예수란 사람이 시간을 초월해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니 유대인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미친 사람의 미친 말 정도로 넘길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처형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결 심판을 해도 될 정도로 엄중한 죄를 지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동안의 주장에 비춰보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소개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5:46에서,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했던 예수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하면서 그분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이스라엘 땅에 사셨지만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설교는 들려져야 할 복음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심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보고 싶어했고 실제로 보았던 예수님을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신 분으로서 유한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 우리는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이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 이야기를 세상에 마음껏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