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인간 관계가 어긋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깨진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벼운 감기 몸살처럼 지나갈 때가 있는 반면 평생 가슴에 응어리가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에 상대방의 소중함을 모른채 관계를 끊어버리는 최악의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그들은 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기적과 설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예수님을 제거할 생각만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같은 단어인 ‘아버지’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심각한 문제를 알려주고 계셨지만 그들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오래된 확신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란 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오게 하시는 예수님의 특단의 조치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선하게 대했던 아브라함의 태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18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주의 천사들을 극진히 대접했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러 온 이들을 한결같이 최상의 예우로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서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것과 모순되는지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시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이를 극진히 예우했던 아브라함과는 달리 그의 후손이라던 유대인들은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착각이 불러온 가장 비참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지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니 문제될 것이 없어’란 착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어떤 한 가지를 갖고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독이 되어 내면에서부터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생각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너무도 무서운 착각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듣지 못하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그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할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