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건설되었지만 국론이 분열되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나라 전체가 멸망당합니다. 그 이후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바벨론에 이어 페르시야, 그리고 로마에 의해 자유를 잃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활동하셨고 유대인들을 향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란 메시지를 선포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로마로부터의 자유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실은 로마의 종이 된 상태인데, 그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비극적인 일을 당해 현실을 부정하는 심리 상태를 드러낸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지만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로마가 유대인들을 압박해도 자신들은 절대 그들의 종이 아니라는 민족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가 아무리 그들을 종처럼 여겨도 한 순간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그들의 확신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곧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임을 뜻하며 이것은 어느 민족도 빼앗을 수 없는 그들의 고유한 신앙입니다.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유대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나라를 빼앗기고 삶이 위태로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습니다. 과연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유대인들을 향해 엄청난 파열음을 일으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자긍심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드러내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것은 ‘죄의 종’이란 영적인 실체에 관한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 하신 예수님의 진단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자긍심의 뿌리까지 뽑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죄의 종’이란 진단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긍지가 얼마나 헛된 일인지를 가감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헛된 자긍심에 사로잡혀 영적인 실체를 전혀 보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무지함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죄의 종이라는 예수님의 진단은 유대인들이 지금 당장 무엇을 듣고 깨달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헛된 긍지에서 벗어나 당장 ‘죄의 종’이 된 자신들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한 영적 진단입니다. 이것이 ‘죄의 종’이란 실체를 드러낸 예수님의 의도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제부터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일에 쏠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삶의 본질입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깊이 고민할 때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긍지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 경제적인 풍족함, 학업적 성취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로 긍지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에 취해서 ‘죄의 종’이란 실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파괴하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헛된 자긍심에 만족하며 산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 앞에 나오면 이 모든 인간적 자긍심을 내려놓는 겸손을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영적 비참함을 깊이 깨닫고 그것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신앙은 세상이 주는 모든 자긍심에서 벗어나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겸손을 배우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헛된 자긍심과 싸우는 동시에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