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장24절 “죄에서 벗어나려면” 2021년 2월 4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우리는 살면서 마치 늪에 빠진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 때 이런 기분을 느낍니다. 이것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을 넘어 삶 전체를 휘감을 때에는 공포 그 자체가 됩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절망감이 뼛 속까지 스며들기에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경고등처럼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이제는 좀 쉬면서 삶을 돌아보라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삶에 위기가 닥쳐 왔지만 잠깐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에 삶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서 이러한 경고 메시지를 던져 주셨습니다. ‘너희가 죄 가운데 죽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 가운데 죽는다’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21절에 이어 24절에서 예수님이 다시 한 번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하였노라”고 하신 것은 이것이 얼마나 위급한 일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달아 어떻게 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을 촉구하신 것인데 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가난과 기근에 고통당하는 현실만을 직시할 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 가운데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비극적인 삶을 중단시킬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는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이 말을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는다면 너희는 죄 가운데 죽지 않을 것’이라 바꾸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믿음’인데, 막연한 대상 또는 잘못된 대상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을 당시 유대인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죄 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뿐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당대 유대인들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여기고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만을 더욱 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믿음’을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진리는 지금도 외쳐져야 할 명백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교회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럿 있다는 논리에 함몰되면 안됩니다. 죄 가운데서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고 그 길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죄에 갇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님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해답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중심에 언제나 예수님이 계심을 보여줄 때 이러한 해답은 더욱 설득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요소임을 잊지 않고 오늘도 죄에서 벗어난 자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