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향해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는 말을 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그가 자결하려는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임당할 것을 예고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살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죽음이 갖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내가 가는 곳’이란 죽음의 장소만을 가리키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7:33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가는 곳’의 실제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에 걸쳐 ‘그가 나를 보내셨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라 부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인데 바로 그에게로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곳을 ‘하늘’로 지칭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란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시겠다고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유대인들은 ‘자살’로 해석해서 비꼰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십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란 말씀인데,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지만 다른 모든 유대인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위에서’ 났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셨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인간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셨던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린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이것을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묘사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얼마나 당대 모든 유대인들과 다른 존재로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과 다른 존재로 태어나셨고 다른 존재로 살아가셨음을 밝히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자기 자신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분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이기에 그 속에 갇혀 사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베풀 수가 있음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자격을 갖고 계시는가란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갖고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우리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죽임을 당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신 유일한 분으로서 우리를 구원할 자격을 갖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너희’와 ‘나’의 근본적인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이제라도 그를 통해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외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베풀 유일한 자격을 갖고 계심을 세상은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위에서 나셨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이 땅을 사셨던 유일한 분이심을 세상은 깨달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예수님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현실적인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까맣게 잊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이라도 구원을 베풀 자격을 완벽히 갖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예수님을 위해 살수 있는 영적인 에너지를 얻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