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장17절-18절 “두 사람의 증언” 2021년 2월 1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이유로 유대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모세 율법을 어겼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행위를 노동으로 해석했기에 이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 권력자들은 예수를 율법 파괴자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들은 이 점을 부각시키기위해 모든 화력을 끌어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께 끌고 와서 모세 율법을 근거로 돌로 쳐야 하느냐고 함정 질문을 한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 ‘나는 세상의 빛’이란 선언을 하자 유대 권력자들은 모세 율법에 호소하면서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자가 증언’은 법적인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려는 자임을 드러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란 모세 율법을 인용하면서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자가 증언’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 맞서서 ‘두 사람의 증언’ 이야기를 거론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에게 율법 파괴자란 오명을 뒤집어 씌운 유대인들의 전략을 반박한 것입니다. 예수를 율법 파괴자로 몰아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를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율법을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유대 권력자들에 맞서서 예수님은 율법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증언’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증언과 아버지의 증언이 그것입니다. 18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이것을 과연 두 사람의 증언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증언’에서 당사자는 빠져야 하지 않느냐란 반론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유대 권력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충분히 이렇게 반박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 해석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증언’에 누가 포함되어야 하느냐란 논란의 해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증언에 따라 ‘나는 세상의 빛’이란 예수의 선언이 참이 되거나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자신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 선언한 것과 그것을 아버지 하나님이 증언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내가 나를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다’고 하셨고 모세 율법에 근거해서도 예수의 ‘나는 세상의 빛’이란 선언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사람의 증언’의 실체인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어떠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나는 세상의 빛’이란 선언은 얼마든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증언’에서 예수님은 빠져야 한다거나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에 증언자의 자격이 없다는 논란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예수의 ‘자기 주장’과 그것을 지지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느냐입니다. 당시 유대 권력자들은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이 사실을 회피했습니다. 예수의 ‘나는 세상의 빛’이란 선언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으려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앞에 서 있나요? 진심으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그렇다면 ‘두 사람의 증언’이 있다는 예수님의 주장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자기 주장과 그것을 지지하는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세상의 빛’이라 하신 예수님의 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에 적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