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누군가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래 경연 대회에 참여하게 되면 심사 위원들의 판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를 얼마나 잘했느냐를 판단해야 점수를 매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평가를 들으면 마음에 기쁨이 가득해집니다. 반면에 낮는 점수를 얻게 되면 속상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판단받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로부터 판단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 판단 기준이 너무 주관적일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지금 판단을 받는 위치에서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라고 대응하고 계십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와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는 것은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거절하고 무엇이든 판단하려는 본성적인 태도를 가리킵니다.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는 예수님의 태도와 반대되는 것이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기준으로든 다른 이를 판단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본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들의 판단하려는 욕망에 맞서서 예수님은 지금 정면으로 싸우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하신 것은 자신의 판단에도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을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란 답을 내놓으셨습니다.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시지만 만약 판단할 일이 있어서 하게 된다면 그것은 조금도 오류가 없는 정확한 판단임을 피력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로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심이라”를 제시하셨는데, 혼자만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된 판단을 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입니다. 과연 어느 누가 자신의 모든 판단이 정확히 아버지 하나님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만이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게 내리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도 확실하기에 만약 판단하게 된다면 자신의 판단에는 조금도 오류가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당시 유대 권력자들로부터 끊임없이 판단을 받고 있다는 상황입니다. 이렇듯이 판단받는 일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판단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판단을 계속해서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셨습니다.
판단받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나도 판단하지 않으니 당신들도 나를 판단하지 말라’고 한들 그들은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판단받는 상황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한다’는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판단받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우리도 남을 판단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신앙적으로 위험합니다. 판단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상실할 수가 있습니다. 판단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판단을 주고 받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신앙적으로 건강해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