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장10절-11절 “정죄함은 없어졌지만” 2021년 1월 26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의 마음 가짐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에 얼마나 다를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기 시작 시점에서 선수들이 마치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시작인데 마치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면 아주 위험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부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태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긍휼도, 용서의 기미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죽어 마땅하다는 정죄만 있을 뿐입니다. 돌에 맞아 죽는다해도 누구 하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 모든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돌을 들고 죽일 태세를 하던 모든 이들이 여인에게서 물러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오직 여인과 예수님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모르고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고발’ ‘정죄’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인을 회복시키려는 의도에서 하신 질문입니다. ‘너를 고발하고 너를 정죄하던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보신 것은 이 여인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발과 정죄’가 사라진 현실을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고발과 정죄가 사라진 현실은 예수님을 만난 모든 이들이 겪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너무 잘 알아서 로마 교회를 향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자신있게 외쳤던 것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이론이 아닌 삶 속에서 고발과 정죄가 사라진 현실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실감났을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고발당하고 정죄받아야 할 행동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이후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란 죄 사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죄를 지은 여인을 고발하고 정죄하던 모든 목소리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여인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얼마나 체감했을까요? 그렇기에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너를 고발하던 이들이 다 어디에 있느냐’고 되새겨주신 것입니다. 죄값을 치루어야 했던 여인의 입장에서 ‘고발과 정죄’가 완전히 사라진 현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고발과 정죄가 사라졌음을 여인은 평생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고발과 정죄를 당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모두 사라졌으니 그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발과 정죄가 사라진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다 끝난 일인 것처럼 생각하면 신앙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고발과 정죄가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인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고발과 정죄가 사라진 행운을 얻었으니 더 조심해서 나쁜 행위를 은밀하게 하자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간음하던 삶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기에 예수님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죄함은 없어졌으나 그것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영적인 시각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하던 모든 목소리들은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