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장1절-6절 “신앙 함정” 2021년 1월 22일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성경은 마귀를 ‘참소하는 자’라 칭합니다. 정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존재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주 느끼는 ‘내가 이러고도 예수 믿는 사람인가’란 정죄 의식은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흔한 공격 방식입니다. 양심에 걸리는 행동이나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우리로 하나님을 피하도록 부추깁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라는 겸손함이 아니라 빛을 싫어하는 어둠처럼 하나님을 기피 대상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마귀의 교묘함은 거의 천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교묘한지 우리가 속는 줄도 모르고 당할 때가 많습니다. 절묘하게 파놓은 함정이라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빠질 정도입니다. 이런 식의 함정을 파놓고 지금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빠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음행 중에 잡혀 온 여자를 예수 앞에 끌고 와서는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조작에 의한 것이든 우연히 잡힌 것이든 상관없이 간음한 여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왔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가 드러나는데 그들은 모세 율법을 거론합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물어봅니다. 현장에서 잡혔다면 율법대로 처벌하면 그만인데 이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몰아넣고자 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들의 의도를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를 시험하고자 간음한 여자를 예수 앞에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 목적은 ‘고발할 조건을 얻기’ 위함입니다. 죄를 지은 여자를 빌미로 예수를 고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도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바리새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보냈는데 그들마저도 예수의 설교를 듣고 그를 변호하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제거할 것인가를 놓고 밤낮 없이 궁리했습니다. 그러다 그를 고발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율법대로 하라고 하면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란 오명을 뒤집어 씌울 수가 있는 절묘한 함정입니다. 어느 쪽도 답이 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해서 예수를 곤란한 지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실현하시는 상황에서 마귀가 바리새인들을 이용해서 그를 넘어뜨리려 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 함정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우리 앞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신앙 생활은 꽃 길만 걷는 삶이 아닙니다. 온실 속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살아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온갖 이상하고 괴이한 함정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교묘해서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런 함정을 발견하고 회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경건의 삶을 꾸준히 살아갈 때 이런 함정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란 갈림길에서도 깨어 있는 영성을 갖고 있다면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훈련되어야 할 영성입니다. 신앙 함정을 알아채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영성을 쌓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