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7장34절-36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2021년 1월 14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권력도 예수님을 어찌하지 못할 것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유대 권력자들이 예수를 잡아 감옥에 넣으려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기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입니다. 예수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자들의 어리석음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입니다. 물론 뒤에 가서 예수를 잡아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 권력자들이기에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약하거나 방어 능력이 부족해서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권력은 종이 조각에 불과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가서 부활을 통해 입증이 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당시 유대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불평을 쏟아낸 것입니다. 그들은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란 조롱섞인 비난을 뱉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이기에 예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온갖 비아냥을 쏟아내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기 전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유대인들처럼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예수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알고 있기에 이 말씀의 진의를 충분히 인지할 수가 있습니다. 부활 이후 승천하신 예수님이시기에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이시기에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의 임재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장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이런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모든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역사들이 이루어진 후에 신앙을 갖게 되었기에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이해했기에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평생에 걸쳐 그 의미들을 배우고 깨달아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인격적인 반응입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묵상하며 그분의 길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을 절망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서 새롭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지금도 만나시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지닌채 여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철저히 예수님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