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7장31절-33절 “반대를 무릎쓰고” 2021년 1월 13일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군중 심리’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에, 자제력을 잃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의 언동에 따라 움직이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심리 상태’입니다. 개인이 단체의 흐름에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에 대한 군중 심리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를 ‘좋은 사람’이라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기치는 사람’이거나 ‘귀신에 들린 사람’으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를 믿는 이들이 꽤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예수에 대한 신뢰가 매우 컸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를 변호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겠는가’란 말은 그를 신뢰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공격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를 변호하고 있어도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이들은 더욱 공격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당시 권력의 주축들인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부하들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군중 심리가 예수 쪽으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는데, 이제는 예수의 자유를 빼앗고 그를 감옥에 집어넣을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더 이상 예수를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판단을 그들이 한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예수는 더 이상 자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설교와 기적을 행하실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의 일부는 예수에 대해 환호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암울한 상태입니다. 힘으로 누르려는 권세자들의 모습은 예수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바로 이 점을 노리고 그들은 예수에 대한 공격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반대를 무릎쓰고 예수를 믿었던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옹호하던 이들에게 들려져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33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권세자들에게 체포되어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권세자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계시는 예수님의 위치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에게 돌아간다’는 말씀은 따르는 이들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사람들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됨을 초대 교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넓은 맥락에서 본문을 본다면 온갖 반대를 무릎쓰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세상의 반대 속에서 믿는 자들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로서 여러 가지 반대에 부딪힐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세상에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반대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지금 여기서 매 순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당당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