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7장19절-24절 “올바른 판단” 2021년 1월 8일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에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사람마다 양심을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 양심을 믿을 수 없을 때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법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입니다. 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모세 율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습니다. 십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규칙이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안식일 준수’는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유대인들은 판단했습니다.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냐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 율법을 어긴 자란 낙인을 찍어 예수님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비합리적이고 표리부동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모함을 한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고 살면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그들의 잔인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본문 19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는 말씀은 유대인들의 아픈 곳을 날카롭게 찌른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고 죽음에 몰아넣으려는 그들의 간악함을 폭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십니다. 22절,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할례를 안식일에 행해도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온 할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그것을 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정당한 행위라고 그들은 규정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이 되어도 그것을 행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이 모세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키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맞다면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는 예수님의 항변은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다면 병든 사람을 고치는 행위도 정당한 것이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과연 이것을 유대인들이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요? 이미 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행위를 범법행위로 정죄했기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특권 의식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는 말씀으로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판단 기준이 공의롭지 못하고 임의대로 세워진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행위는 절대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님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집행하는 자의 위치에 서게 될 때 가장 위험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공의’가 아닌 ‘외모’로 판단하는 한 법을 제대로 집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는 자와 집행하는 자로서 완벽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판단은 항상 옳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분의 판단을 믿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