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7장10절-13절 “위축된 신앙” 2021년 1월 5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예수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움직임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초막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모습을 드러낼 것을 예상하고서 유대인들은 그를 찾아다녔습니다. 11절,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면서 마치 공개 수배하듯이 예수를 잡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를 숨기지 말고 발견 즉시 고발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범죄자 취급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악소문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예수에 대한 좋은 소문이 예루살렘 성 안에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나타나도 잡기 어렵다고 그들은 판단했던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른 시간 안에 예수를 잡고자 했던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고발자가 되도록 권력으로 압박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느냐’란 말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예수를 고발할 수 있도록 압박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평소 예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작은 목소리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각자 예수를 보는 시각이 너무도 달라 논쟁이 되기도 했습니다. 12절,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란 진술은 당시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충분히 느끼게 해줍니다. ‘좋은 사람’ 또는 ‘속이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평가하면서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평가하는 근거를 본문은 제시하지 않고 사람들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만을 드러낸 것입니다. 당시 여론이 일방적으로 예수님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간 상황에서 그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겉으로 드러낸 것은 인상적입니다. 아무리 여론이 나빠도 예수가 행하셨던 일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은 여론의 영향을 깊이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예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도 여론이 너무 나쁘면 그것을 표출하지 못합니다. 13절,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이것은 12절,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여론을 장악했기에 사람들은 무서워서 공개적으로 예수를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 옹호하는 말을 하면 권력자들의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큰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yes’할 때 혼자서 ‘no’라고 할 수 있으려면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는 사회적인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보복을 당하거나 권력에 짓눌려 희생을 겪어야 한다면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면 우리는 크게 위축됩니다.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옹호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약해지면 작은 위협에도 크게 무너지게 됩니다. 조금만 손해를 봐도 신앙의 자리를 삶 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 평판, 명성이 예수님보다 중요하면 이런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이것을 이겨내야만 우리는 어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