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깊고 끈끈한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물론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만 혈육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중한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을 떠올린다면 얼마나 혈육이 중요한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혈육 관계가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혈육인 형제들이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예수님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1절,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예수님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5:18에서도 이미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소개되었는데, 험악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 상황입니다. 특히 유대에 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갈등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혈육인 예수님의 형제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친형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친형을 더욱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유대 예루살렘에 지금 공개적으로 올라가면 예수님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밖에 없음에도 형제들은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라’고 독촉합니다. 명분은 “당신이 행하신 일을 제자들도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제자들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적을 보여주면 다시 응집할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형제들은 예수님을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란 말로 부추깁니다. ‘묻혀서’란 말은 비겁하게 이렇게 숨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란 말로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기 위한 계략을 꾸민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면 어느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흩어진 제자들을 하나로 모을 뿐 아니라 세상이 얕잡아보지 못하게 위대한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그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을 형제들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에 능력을 나타내어 존재감을 과시할 뿐 아니라 지배자의 위치에 서라는 형제들의 말에 대해 본문은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의 잣대로만 살아가는 형제들의 불신앙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어떻게 그 일을 이루실지를 수없이 말했어도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하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려는 것은 언제나 불신앙으로 이끌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자로서 세상을 살 때에 부딪히는 유혹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님의 능력까지도 사용하고 싶어한다면 이미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세상의 시각이 아닌 예수님의 눈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