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100미터 달리기와 달리 금방 끝나지 않는 인생의 특징을 잘 드러낸 비유입니다. 마라톤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지만 끝까지 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도저히 뛸 수 없음에도 기어코 완주를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관중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골인지점을 통과합니다. 우수한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주어진 환호는 없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소수의 관중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에 대한 뿌듯함이 선수에게 주어집니다. 인생은 이처럼 길고도 험난할 수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마라톤에 비유한 인생의 길은 신앙의 여정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앙도 인생처럼 수많은 굴곡을 겪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이 과연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란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안고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예수님 곁을 떠난 장면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란 장면은 예수님을 떠난 이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실망해서 떠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신뢰가 쌓이면서 적극적으로 따르던 제자들인데 이제는 실망감에 사로잡혀 그의 곁을 떠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일시적으로 방황해서 예수님 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본문의 묘사처럼 그들은 영구히 떠나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가 생겼다거나 마음은 예수님을 따르지만 물리적으로만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떠나게 만들었느냐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란 말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들은 후일 것입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기대를 접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던 메시아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열렬히 환호하다가 이렇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따르게 했는지, 왜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지를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은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르고 싶으면 따르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되지 않느냐란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선택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신 것처럼 개인의 결정만으로 신앙을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동안 우리는 개인의 의지가 아닌 믿는 대상인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예수님을 떠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면 이미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두지 않고 손님처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시간 문제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신앙은 우리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구석 자리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 자리를 예수님이 차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가르침을 듣든, 어떤 삶의 위기를 만나든 예수님이 언제나 삶의 중심이라면 우리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꿋꿋이 버텨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