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6장62절-63절 “타협은 없다” 2020년 12월 25일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장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할 뿐 아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니 거부 반응이 크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수님을 적극 따르고 응원하던 제자들까지도 그의 가르침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의 불평이 점점 커지면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하시면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일시 후퇴하는 전략을 짜지도 않으셨습니다. 분위기를 진정시키지 않으시고 더 센 발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던 예수님이 장차 일어날 일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실 것이란 말씀인데 과연 제자들이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란 말에도 힘들어했던 그들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씀에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르친 말에 걸려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예수님은 물러섬이 없으셨습니다. 이유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메시지는 다양한 의견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걸려넘어졌지만 생명의 말씀인 점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다시 이 생명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걸려넘어졌으니 예수님이 틀렸다거나 다른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육의 생각을 극복해야 합니다. ‘육은 무익하니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상태가 ‘육’인데 이것에 매여 있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목할 점은 타협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눈높이 교육이란 말이 있듯이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일단 유보하고 더 낮추어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당황스러운 모습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혼자만의 주장이면 누가 알아주겠느냐란 이 시대의 진리 기준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의 태도는 고집스럽게 비쳐질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메시지이기에 타협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 시대 교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수의 의견으로 진리를 정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진리를 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지켜오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세상은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지만 교회는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난 이천년 동안 교회는 생명의 말씀을 지켜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쪽에서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포기하고 다른 이미지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입고 가야 사람들이 들어준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란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주면 된다는 매우 인간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를 살리는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실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 부분에서 어떤 타협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전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